본문 바로가기
현대문학테마 URL 복사

현대문학 테마 38. 정지용

2014. 6. 29. by 솜글

정지용의 생애

어린 시절과 휘문고보 시절

정지용(鄭芝溶, 1902~?)은 충북 옥천의 한 농가에서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는 한약상을 경영하며 어느 정도 부를 축적했지만, 정지용이 어렸을 때 홍수 때문에 가세가 기울었다. 때문에 그는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혼자 산천과 들판을 돌아다니면서 공부한다. 이때 몸으로 겪은 고향의 갖가지 풍습은 그의 소년기에 깊이 각인되어 문학에 대한 꿈으로 익어간다.

1918(17)에는 비로소 휘문고보에 입학한다. 사실 당시에는 웬만큼 부자가 아니면 서울 유학은 꿈도 꾸기 어려웠는데, 정지용은 그의 재능을 눈 여겨 본 친지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휘문 1학년 때 정지용은 요람동인을 만들어 동인지 «요람»10여 회 간행하고, ‘문우회학예 부장을 맡기도 했다. 1919(18)에는 소설 <3>을 발표하는 등 날로 문학에 심취한다. 또 이 시절 그는 홍사용, 박종화, 김영랑, 이태준 등의 선후배와 가까이 지내 훗날까지 함께 문학을 한다.

문학 활동의 시작

졸업 후 정지용은 1923(22) 장학생으로 교토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입학한다. 거기서 1926(25) 유학생 회지 «학조» 창간호에 시 <카페 프란스>, <슬픈 인상화>를 비롯한 시, 시조, 동요 등을 발표한다. 이들 작품에서 신선한 감각으로 근대 풍물과 이국정서를 담은 정지용은 문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1927(26)에는 <홍춘>, <따리아>, <산엣색시 들녘사내>, <갑판 우>, <바다>, <향수> 등을 잇달아 쏟아냈다. 또 당시 일본 시단을 대표하던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가 주관하던 잡지 «근대 풍경»에 투고한 시가 호평을 받자 일본 문단에도 이름이 알려졌다.

1929(28)에는 윌리엄 블레이크(W. Blake)에 관한 논문을 내고 대학을 졸업하는데, 정작 그가 심취한 것은 타고르와 기타하라의 시, 중국의 한시와 같은 동양 사상에 바탕을 둔 시였다. 졸업 후 귀국하여 모교인 휘문고보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하는데, 종종 학생들에게 신경질을 부려 신경통선생으로 불리기도 했다.

1930(29)에는 박용철, 김영랑과 함께 시문학동인이 되어 «시문학» 창간호에 <이른 봄 아침>, <경도 압천>, 2호에 <바다 2>, <피리>, <저녁 햇살> 등을 발표하였다. 이들 시에서 정지용은 영문학에 대한 소양과 동양 사상에 대한 관심을 세련된 시어에 담아 절묘하게 조화시켜 시단의 눈길을 한 몸에 받았다.

사진 출처 : 나무위키(https://namu.wiki/w/%EC%A0%95%EC%A7%80%EC%9A%A9)

«카톨릭 청년»

1933(32)에는 구인회에 가담하는 한편, 유학 시절부터 가톨릭교에 몸담게 된 이유로 «카톨릭 청년»의 문예란을 맡고 여기에 방제각이라는 세례명으로 <은혜>, <>, <임종>, <불사조> 등의 신앙시를 다수 발표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던 그는 훗날 자신의 둘째 아들에게 가톨릭 사제 수업을 권유한다.

정지용이 참여하고부터 «카톨릭 청년»은 제호와는 무관하게 모더니즘 취향의 실험적 시를 쓰던 김기림, 이상 등에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다. 정지용 자신도 신앙시가 아닌 <소묘>, <해협의 오전 두 시>, <시계를 죽임> 등의 모더니즘 시를 발표하여 문학과 종교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였다.

문학 방향의 정립

1935(34)에는 시문학사에서 첫 번째 시집 «정지용 시집»을 낸다. 이 시집은 나오자마자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여기 실린 작품은 크게 전통적 순수 서정시와 외래 취향의 시로 나뉜다. 첫 시집 이후 정지용은 동양적 세계와 자연에 한결 심취하여 <옥류동>, <비로동>, <장수산>, <백록담>, <여창 단신> 등 여백의 미를 산수화 같은 느낌의 시편들을 발표한다. 이러한 면모를 살려 1939(38)에는 이태준이 발간하던 종합 잡지 «문장»<장수산 1 · 2><인동차> 등을 발표하였다. 정지용은 «문장»의 시 부문 심사 위원을 맡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의도적으로 서구 소재나 어휘를 사용한 것들을 꼬집어내서 탈 서구적 취향을 단단하게 굳혔다. «문장»을 통해 정지용의 영향을 받은 시인으로는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박남수, 김종한 등이 있는데, 이들은 훗날 한국 시단의 기둥으로 성장한다.

정지용의 명성이 높아지자 여기저기에서 지원을 받아 국토 순례를 하며 기행문을 쓰는데, 그 체험에서 나온 것이 1941(40) 낸 두 번째 시집 «백록담»이다. 여기에 실린 시들은 행간마다 자연에 대한 경이가 배어 있으며, ‘백록담으로 상징되는 조국의 자연에 대한 깊은 탐험을 내면의 언어로 형상화시키는 높은 경지를 보여준다.

그러던 중 정지용은 1942(41) <이토>와 같이 잠시 일제에 협력하는 내용의 시를 내기도 했지만, 이후 해방 때까지 작품 활동을 거의 중단한 채 묻혀 지낸다.

해방 이후

해방 후 정지용은 이화여전 교수와 경향신문사의 주간을 겸하지만 시는 거의 쓰지 않았다. 그런데 줄곧 순수 예술을 고집하던 그가 느닷없이 민족 문학 건설을 표방하는 좌익 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한다. 이러한 결정은 해방 직정 미온적이나마 일제에 협력한 것에 대한 반성과 지인들과의 친분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점은 나는 공산주의는 싫지만 몇 십 년을 두고 사귄 우의는 끊을 수 없다.”는 그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정치 투쟁적 활동은 그의 체질에 영 맞지 않았고, 때문에 계속해서 시를 많이 쓰지 못하고 신문사 주간 등을 지낸다. 해방 후 5년 동안 통틀어 시 한 편, 기념 시 두 편, 시조 다섯 수만을 썼을 뿐이다. 그런 와중에도 그간의 시를 모아 1946(45)에는 «지용 시선»을 내고 1948(47)에는 37편의 시, 수필, 기행문이 수록된 «문학 독본»을 냈다.

1950(49) 에는 6 · 25 와중에 납북되는데, 같은 해에 평양 감옥에서 폭사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한에서는 정지용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되었다가 1988년에 해금되었다.

정지용의 시

정지용은 한국 현대시 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시인 중 한 사람이자, 그 역량이 너무도 포괄적이어서 1930년대 문학의 흐름 그 어느 곳에 놓아도 잘 꿰어 맞춰지지 않는 시인이다. 정지용 시의 특징으로 다듬은 시어를 들 수 있다. 정지용은 시어를 고르고 다듬는 데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일상에서 흔하게 사용되지 않는 고어나 방언을 시어로 폭넓게 활용하고, 언어를 독특하게 변형시켜 자신만의 시어로 개발했다.

시의 형식면에서는 21연으로 된 단시형을 즐겨 썼다. 또 줄글식 산문시형도 즐겨 썼는데, 이들 작품은 쉼표나 마침표 없이 문장이 종결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연계적 구성을 보여준다. 1920년대의 김소월이 자아 표출을 통하여 자기감정을 과다하게 노출한 감상적 낭만주의의 경향을 보였다면, 정지용은 대상의 뒤에 자신을 숨기고 대상을 적확하게 묘사하는 명징한 모더니즘 · 이미지즘의 시 세계를 열어 보였다.

정지용의 시 세계는 휘문고보 재학 때부터 일본 유학 시절까지의 초기 시, 귀국 이후 서울 생활이 본격화되면서부터 «정지용 시집»을 간행할 때까지의 중기 시, «정지용 시집» 간행 이후인 후기 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초기 시 <카페 프란스>, <슬픈 인상화>, <파충류 동물>, <향수>, <바다>, <바다 2>, <피리>, <저녁 햇살>

중기 시 <유리창 1>, <무서운 시계>, <고향>, <또 하나 다른 태양>, <종달새>

후기 시 <옥류동>, <비로동>, <장수산>, <백록담>, <여창 단신>, <장수산 1 · 2>, <인동차>

초기 시

<향수>

1923(22) 3월에 써서 1927(26) 발표한 작품이다. 토속적이고 원초적인 심상으로 고향 정경을 재구성함으로써 그리움이라는 주제를 부각시킨다.

<향수>는 전체적으로 유장한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연마다 후렴 시행이 따라와 음률적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후렴행은 고향의 정경에 대한 시적 화자의 정서를 집약적으로 제시함과 동시에 연과 연을 연결하여 시 전체의 이미지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정지용은 시어 선택에 있어서 어형을 변화시킨다거나 두 단어를 합성한다거나 양성 모음으로 바꾸어 쓴다거나 또는 우리말에 새롭게 의미를 첨가하여 강조하는 등의 언어적 기법을 최대한 활용한 시인이다. 이 시에서는 해설피’, ‘참하’, ‘함추름’, ‘휘적시든등이 보인다.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활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카페 프란스>

`<카페 프란스>1926(25) <슬픈 인상화> 등과 함께 발표한 데뷔작 중 하나로, 발표 당시 젊은이들에게 애송되었던 작품이다. 시 제목도 이채롭거니와, 표현 기법도 모던하다. 화자와 앵무새의 대화가 삽입되어 있고 발표 당시 활자의 크기와 활자체도 다양하게 구사하며 이른바 형태주의 기법을 도입하고 있는 시이다.

루바쉬카’, ‘보헤미안 넥타이’, ‘뻣적 마른 놈이 밤새 불을 켜두고 있는 카페 프란스로 향하고 있다. 비오는 밤, 유학생 셋이 비를 맞으며 카페를 찾아가는 정황은 가볍고 유쾌한 기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급인 듯한 울금향아가씨도 이들을 반겨 맞지 않는다.

화자는 자작의 아들도 아무 것도 아니고 나라도 집도 없는, 그저 무능한 식민지 백성일 뿐이다. 자작은 한일 합병 당시 일본에게 협조한 친일파 내지는 일본이 이용하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내린 작위 중 하나다. 이완용은 백작이었고, 유길준 등 8명은 작위를 거절하거나 반납하였다고 한다. 이른바 그들 귀족2세들은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방탕한 생활을 했고, 가난한 유학생들의 노여움을 샀을 것이다. 화자는 그런 비애를, 이국종 강아지를 불러 하소연하듯 안으로 다스리며 시를 맺고 있다.

<카페 프란스>
옴겨다 심은 종려(棕櫚)나무 밑에/ 빗두루 슨 장명등,/ 카페 프란스에 가쟈.//
이놈은 루바쉬카/ 또 한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뻣적 마른 놈이 압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 처럼 가는데/ 페이브멘트에 흐늙이는 불빛/ 카페 프란스에 가쟈./ 이 놈의 머리는 빗두른 능금/ 또 한놈의 심장(心臟)은 벌레 먹은 장미(薔薇)/ 제비 처럼 젖은 놈이 뛰여 간다.//
오오 패를([鸚鵡]) 서방! 꾿이브닝!”//
꾿이브닝!(이 친구 어떠하시오)”//
울금향(鬱金香) 아가씨는 이밤에도/ 경사(更紗) -틴 밑에서 조시는구료!//
나는 자작(子爵)의 아들도 아모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히여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大理石) 테이블에 닷는 내뺌이 슬프구나!/ 오오, 이국종(異國種)강아지야/ 내발을 빨어다오./ 내발을 빨어다오.

한편 함께 발표한 <슬픈 인상화>에서도 초기 정지용의 모더니즘 색채가 담뿍 느껴진다.

<슬픈 인상화>
수박냄새 품어 오는/ 첫여름의 저녁 때…….//
먼 해안 쪽/ 길옆 나무에 늘어 슨/ 전등. 전등./ 헤엄쳐 나온 듯이 깜박어리고 빛나노나.//
침울하게 울려 오는/ 축항의 기적소리…….기적소리……./ 이국정조로 퍼덕이는/ 세관의 기ㅅ발. 기ㅅ발.//
세멘트 깐 인도측으로 사폿사폿 옮기는/ 하이얀 양장의 점경!//
그는 흘러가는 실심한 풍경이여니……./ 부질없이 오량쥬 껍질 씹는 시름…….//
아아, 애시리, / 그대는 상해로 가는구료…….

<바다 1> · <바다 9>

정지용은 1930년대 중반을 전후하여 <바다> 연작을 10여 편 발표한다. 정지용의 시 세계에서 초기에는 주로 바다, 후기에는 주로 이 주요한 이미지로 등장하고 있다.

<바다 1>은 감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생명력 넘치는 아침 바다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 · · · · ·’와 같이 파도가 소리치며 밀려오는 것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여 청각과 시각이 동시에 드러나는 효과를 수반하며, 4연에서는 파도 소리를 의성어로 드러내 감각적 느낌을 살렸다.

<바다 1>
· · · · · · 소리치며 달려가니,/ · · · · · · 연달아서 몰아온다.//
간밤에 잠 살포시/ 머언 뇌성이 울더니,//
오늘 아침 바다는/ 포도빛으로 부풀어졌다.//
철썩, 처얼썩, 철썩, 처얼썩, 철썩/ 제비 날아들 듯 물결 사이사이로 춤을 추어.

<바다 9>는 1935(34) «시원»에 발표한 작품으로, <바다> 연작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정지용의 감각적인 시적 기교와 탁월한 시적 상상력을 유감없이 잘 보여준다.

화자는 한 폭의 그림처럼 바다를 형상화하고 있다. 파도가 밀려 왔다 밀려가는 모습을 뿔뿔이 달어날랴고한다고 표현하고, 파도가 몰려와 뭍에 부딪쳤다 흩어지는 것을 도마뱀 떼로 보았으며, 그 빠른 움직임을 재재발렀다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처럼 시 전반에서 사물의 역동적인 모습을 감각적으로 잘 형상화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바닷가에서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담아 올리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를 상상하게 만든다.

<바다 9>
1/ 바다는 뿔뿔이/ 달아나려고 했다.//
2/ 푸른 도마뱀 떼같이/ 재재발렀다.//
3/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4/ 흰 발톱에 찢긴/ 산호(珊瑚)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5/ 가까스로 몰아다 부치고/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씻었다.//
6/ 이 애쓴 해도(海圖)/ 손을 씻고 떼었다.//
7/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구르도록//
8/ 휘동그란히 받쳐 들었다!/ 지구(地球)는 연()잎인 양 오므라들고…… 펴고…….

중기 시

<호수 1>

1930(29) 발표한 작품으로, 짧은 길이에 호수처럼 넓고 깊은 그리움을 담은 서정시이다.

<호수 1>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푹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湖水만 하니/ 눈 감을 밖에

<유리창 1>

1930(29) 발표한 시로, 정지용이 자식을 폐렴으로 잃은 후 그 애절한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시인 자신이 슬픔의 주체임에도 차가운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감정을 과잉 노출하지 않으면서 절제된 어조로 형상화하고 있다. 흔히 정지용을 두고 감정의 절제를 통해 시상의 승화를 보이는 시인이라고 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유리창 1>이다.

중심 소재인 유리창은 투명하기 때문에 창밖을 볼 수 있게 해 주지만, 한편으로는 안과 밖을 차단하는 존재이다. 화자는 이 유리창을 통해 로 표현된 죽은 아이의 영상을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유리창때문에 아이에게 다가갈 수 없다. 마지막 행의 ()ㅅ새처럼 날아갔구나!”에서는 아이의 죽음을 미적으로 승화하는 발상이 돋보인다.

<유리창 1>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寶石)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ㅅ새처럼 날아갔구나!

<유리창 1>에는 정지용 특유의 선명한 심상과 함께 모순 형용, 즉 감정의 대위법이 두드러진다. 감정의 대위법이란 상호 모순되거나 대비되는 감각 또는 정신 상태를 결합하여 감정을 객관화시키는 방법을 말하는데, 이를 통해 감정을 절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 시에서는 차고 슬픈 것’, ‘외로운 황홀한 심사에서 모순 형용이 잘 드러난다.

이런 점에서 <유리창 1>은 김소월의 <초혼>과 종종 비교되곤 한다. <초혼>이 부름의 형식, 반복과 영탄을 사용하여 화자의 슬픔을 직접적이고도 강렬하게 표현했다면, 이에 반해 <유리창 1>은 유리와 같이 맑고 차가운 소재를 중심으로 한 감정의 대위법을 사용하여 화자의 감정을 엄격하게 절제하기 때문이다.

<고향>

1932(31) 발표한 작품으로, <향수>와 더불어 정지용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다. 정지용이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서울생활에 익숙해가던 차에 쓴 것인데, 몸은 고향에 돌아왔지만 남에게 빼앗긴 땅이므로 진정한 고향에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정지용의 이러한 민족의식이 나타나 있는 일련의 시 경향을 김용직은 소극적 저항이라 불렀다. 이 소극적 저항의 경향은 그가 가톨릭의 세계에 귀의하면서 중기 시의 양상인 종교시로 선회하게 된다.

한편 정지용은 <고향>에서처럼 시의 한 연을 2행 단위로 쓰는 것을 선호하였는데, 이는 «문장»을 통해 그가 추천한 박목월과 조지훈에게도 흔히 보인다. 영향 관계로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꾹이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진히지 않고/ 머언 항구(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힌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무서운 시계>

1932<옵바가 가시고>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가 «정지용 시집»에 실리면서 개제된 작품으로, 정지용의 객지 체험과 동기간의 정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오빠가 떠나고 혼자 남은 방안에, 화로에 담긴 숯불이 박꽃처럼 하얗게 사위어 간다. 어쩌면 어린 동생은 밤새 타들어가 하얗게 박꽃처럼 사위는 숯불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사위어간다새어간다의 복합적 표현쯤 되는 새워간다로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그 잠 못 이루는 밤, 목이 쉰 기적 소리는 더 크게 들리니 비가 올 듯도 하다. 오빠가 가시고 난 추운 밤, 소녀는 혼자 듣는 시계소리도 무섭다. 이를 표현한 서마 서마는 지용이 새롭게 만들어낸 시어로, 소녀의 조마조마하고 두렵기도 한 마음과 외로운 마음이 함께 담겨 있다.

<무서운 시계>
옵바가 가시고 난 방안에/ 숫불이 박꽃처럼 새워간다./ 산모루 돌아가는 차, 목이 쉬여/ 이밤사 말고 비가 오시랴나?//
망토 자락을 녀미며 녀미며/ 검은 유리만을 내여다 보시겠지!//
옵바가 가시고 나신 방안에/ 시계소리 서마 서마 무서워.

<또 하나 다른 태양>

1934(33)의 작품이다. 종교적 주제가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거나 시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여타의 종교시에 비해 시적 투명성, 간결성과 뚜렷한 이미지가 돋보이는데, 종교적 열의가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한결 간곡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또 하나 다른 태양>
나는 나의 나히와 별과 바람에도 피로(疲勞)웁다./ 이제 태양(太陽)을 금시 일어 버린다 하기로/ 그래도 그리 놀라울리 없다.//
실상 나는 또하나 다른 태양(太陽)으로 살었다.//
사랑을 위하연 입맛도 일는다./ 외로운 사슴처럼 벙어리 되어 산길에 슬지라도-//
오오, 나의 행복(幸福)은 나의 성모(聖母)마리아!

<종달새>

<종달새>1935(34)의 첫 시집 «정지용 시집»에 실려 있는 작품으로, 정지용이 어머니를 떠나 오랫동안 객지 체험을 한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어머니 없이자랐다는 것은 사별의 의미로 볼 수도 있지만, 어머니를 떠나 있다는 의미도 될 수 있겠다.

삼동의 추위가 풀리고 종달새가 하늘 높이 치솟는 따뜻한 봄이 왔다. 밖으로 나온 외톨이 아이는 종달새가 즐거이 비상하며 지리 지리 지리리우짖는 소리가 꼭 저를 놀려대는 것만 같다. 그래서 외톨이 아이는 모래톱에서 한종일 혼자 놀고 있는 것이다. 오랜 세월을 객지에서 보낸 어린 지용의 외로운 마음과 애잔한 풍경이 담겨 있다.

<종달새>
삼동내얼었다 나온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웨저리 놀려 대누.//
어머니 없이 자란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웨저리 놀려 대누.//
해바른 봄날 한종일 두고/ 모래톱에서 나홀로 놀자.

후기 시

<장수산 1>

1939(38) «문장»에 발표한 작품이다. 장수산을 탈속적인 공간으로 형상화하면서 예스러운 어투, 산문적인 진술을 사용하여 슬픔과 시름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장수산 1>에서 시적 화자는 장수산에서 시름을 모두 잊은 채 자연과 동화된 내면세계를 추구한다. 이러한 태도는 자연과 일체화되고자 하는 동양적 세계관과 깊은 관련을 맺는다.

<장수산 1>
벌목정정(伐木丁丁) 이랬거니 아람도리 큰 솔이 베혀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메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좃지 않고 뫼ᄉ새도 울지 않어 깊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 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달려 흰 뜻은 한밤 이골을 걸음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 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 간뒤 조찰히 늙은 사나히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히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디랸다 차고 올연(兀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속 겨울 한밤내—

<장수산 1>‘~이랬거니’, ‘~고녀!’, ‘~이랸다?’, ‘~는다?’, ‘~노니등의 의고형 어미를 사용한다. 의고형 어미는 독자의 일상적 어휘에서 멀어짐으로써 시와 독자 사이에 거리감을 형성하며, 이는 장수산 속 세계가 지닌 거리두기와 맞닿는다. 또 한편으로는 예스러운 어미들을 구사함으로써 신비롭고 동양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또한 이 작품은 시행을 의도적으로 종결짓지 않고 명사형과 줄임표를 사용하는데, 이를 독해 독자들은 시적 화자의 정서가 내면적으로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백록담>

1939(38) «문장»에 발표한 시로, 시집의 제호로 사용한 작품이기도 하다. 정지용은 이 즈음 국토 순례를 하며 기행문과 시편을 썼는데, 그 체험에서 나온 것이 1941(40) 낸 두 번째 시집 «백록담»이다. 여기에 실린 시들은 행간마다 자연에 대한 경이가 배어 있으며, ‘백록담으로 상징되는 조국의 자연에 대한 깊은 탐험을 내면의 언어로 형상화시키는 높은 경지를 보여준다.

<백록담>은 아홉 단계로 구분된 장시로, 한라산 등반 과정에서 이루어진 작품이다. 3연은 죽음조차도 자연현상으로 볼만큼 그 감정적 요소를 모두 배제하고 있으며, 9연에서는 자아를 소멸시킴으로써 일체의 속성을 초월하여 자연으로 되돌리려는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무화시켜 자연과 일체가 되는 합일을 이룬다.

<백록담—한라산 소묘>
1/ 절정(絶頂)에 가까울수록 뻑국채 꽃키가 점점 소모(消耗)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슬어지고 다시 한마루 우에서 목아지가 없고 나종에는 얼골만 갸옷 내다본다. 화문(花紋)처럼 판() 박힌다. 바람이 차기도 함경도(咸鏡道)끝과 맞서는 데서 뻑국채 키는 아조 없어지고도 팔월(八月) 한철엔 흩어진 성진(星辰)처럼 난만(爛漫)하다. ()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러지 않어도 뻑국채 꽃밭에서 별들이 켜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긔서 기진했다.//
2/ 암고란(巖古蘭), 환약(丸藥) 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어 일어섰다.//
3/ 백화(白樺) 옆에서 백화가 촉루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백화처럼 흴것이 숭없지 않다.//
4/ 귀신(鬼神)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모롱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 워 파랗게 질린다.//
5/ 바야흐로 해발육천척(海拔六千尺) 우에서 마소가 사람을 대수롭게 아니녀기고 산다. 말이 말끼리 소가 소끼리, 망아지가 어미소를 송아지가 어미말을 따르다가 이내 헤여진다.//
6/ 첫새끼를 낳노라고 암소가 몹시 혼이 났다. 얼결에 산()길 백리(百里)를 돌아 서귀포(西歸浦)로 달어났다. 물도 마르기 전에 어미를 여힌 송아지는 움매-움매-울었다. 말을 보고도 등산객을 보고도 마구 매여달렸다. 우리 새끼들도 모색(毛色)이 다른 어미한틔 맡길 것을 나는 울었다.//
7/ 풍란(風蘭)이 풍기는 향기, 꾀꼬리 서로 부르는 소리, 제주(濟州)회파람새 회파람 부는 소리, 돌에 물이 따로 굴으는 소리, 먼 데서 바다가 구길때 솨--솔소리, 물푸레 동백 떡갈나무속에서 나는 길을 잘못 들었다가 다시 측넌출 긔여간 흰돌바기 고부랑길로 나섰다. 문득 마조친 아롱점말이 피하지 않는다.//
8/ 고비 고사리 더덕순 도라지꽃 취 삭갓나물 대풀 석용(石茸) 별과 같은 방울을 달은 고산식물(高山植物)을 색이며 취()하며 자며 한다. 백록담 조찰한 물을 그리여 산맥우에서 짓는 행렬이 구름보다 장엄(壯嚴)하다. 소나기 놋낫 맞으며 무지개에 말리우며 궁둥이에 꽃물 익여 붙인채로 살이 붓는다.//
9/ 가재도 긔지 않는 백록담(白鹿潭) 푸른 물에 하눌이 돈다. 불구(不具)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좇겨온 실구름 일말(一抹)에도 백록담(白鹿潭) 흐리운다. 나의 얼골에 한나잘 포긴 백록담(白鹿潭)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기도(祈禱)조차 잊었더니라.

<인동차>

1939(38) «문장»에 발표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인동은 겨울의 추위를 참고 견디며 봄을 기다리는 의지의 상징이다.

깊은 산중 눈은 쌓이고 책력도 없는 산막에 자작나무 벽난로가 붉게 타고 있다. 그늘진 방 한구석에는 무가 여린 순을 저홀로 키우고 있다. 훈훈한 기운으로 흙냄새도 배어나는 산막의 조촐한 방안에서 노인은 가끔 바깥의 휘몰아치는 눈보라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노인의 장벽을 타고 흐르는 인동차의 뜨거운 기운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우리의 감각을 청신하게 환기시켜 주는 대목이다. ‘책력도 없다는 것은 세상의 셈과는 무관하게 살아가는 노인의 초탈한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산속에 칩거해 사는 은자(隱者)의 모습을 여백이 아름다운 수묵 담채화 속에 그려낸 듯하다.

<인동차>
노주인(老主人)의 장벽에/ 무시(無時)로 인동(忍冬) 삼긴물이 나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여 붉고,//
구석에 그늘 지여/ 무가 순돋아 파릇 하고,//
흙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바깥 풍설(風雪)소리에 잠착 하다.//
산중에 책력(冊曆)도 없이/ 삼동(三冬)이 하이얗다.

<4 45> <나비>

<나비><4 45>라는 작품의 마지막 수이니 정지용의 마지막 작품이 되는 셈이다. 우리는 여기서 지용의 최후를 예감하게 된다.

나비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상징하며, 검정 옷을 입은 신령을 꿈에 보면 죽음과 저승 차사의 현몽인 악몽이 된다. 화자는 스스로 나비같이 죽겠다고 말한다. 검정 비단옷을 입은 네 옷가에 앉았다가 환영이 사라지듯 훤한 창으로 날아가겠다는 것이다. 이 말처럼 사라진 지용의 마지막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가 납북되었다지만, 실제로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 정확한 생사여부를 아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4 4조 5수> 中 <나비>
내가 인제/ 나븨 같이/ 죽겠기로/ 나븨 같이/ 날라 왔다/ 검정 비단/ 네 옷 가에/ 앉았다가/ () 훤 하니/ 날라 간
옷, 패션 트렌드, 운동화, 쇼핑, 신상품, 신발, 자켓, 코트, 탈모, 모발이식, 미용, 성형수술, 구두, 부츠, 샌들, 여름 신발, 바지, 롱팬츠, 팬츠, 양말, 모자, 캡, 나이키, 아디다스, ABC 마트, 롱부츠, 첼시부츠, 티셔츠, 원피스, 정장, 수트, 가방, 귀걸이, 목걸이, 반지, 마스크, 시계, 팔찌, 패션, 백화점, 의류, 옷, 머리띠, 롱패딩, 패딩, 점퍼, 야상, 재킷, 화장품, 크림, 스킨, 아이섀도우, 아이브로우, 올리브영, 롯데닷컴, 하프클럽, 니트, 블라우스, 스커트, 치마, 주름바지, 통바지, 크롭티, 와이셔츠, 영어, 토익, 학원, 반찬, 다이어트, 도시락, 닭가슴살, 샐러드, 감자, 계란, 집밥, 요리, 고기, 소고기, 닭다리, 치킨, 아침밥, 삼겹살, 곱창, 밀키트, 선물세트, 저녁 메뉴, 볶음밥, 탕수육, 광어회, 연어회, 해산물, 냉동식품, 참치회, 잡곡밥, 아이스크림, 배스킨라빈스, 배달의 민족, 배달음식, 떡볶이, 튀김, 오징어튀김, 순대, 오뎅, 토마토, 딸기, 사과, 귤, 오렌지, 콤부차, 홍차, 레몬티, 커피, 카누, 네스프레소, 캡슐커피, 식품 직구, 영양제, 비타민, 아이허브, 신용카드, 소액대출, 대출, 보험, 보험상담, 저축은행, 여성대출, 학자금대출, 대출계산기, 대출이자, 주부대출, 임플란트, 치아보험, 자동차 렌트, 제주도 렌트, 렌터카, 자동차, 승용차, 중고차, 자동차보험, 자동차사고, 청약주택, 청약통장, 정기예금, 적금, 주택정약, 아파트, 내집마련, 빌라, 30평대, 부동산, 소형아파트, 치아, 어금니, 송곳니, 법률상담, 모기지론, 대학 편입, 학사편입, 대학교, 웹호스팅, 클라우드, 보안솔루션, 홈페이지, 앱제작, 동영상제작, 영상편집, 기부, donate,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세계구호,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전문자격증, 자격증, 학원, 사이버대학교, 학사, 학위취득, 학점은행제, 토익, 영어, 외국어, 통역, 번역, 동시통역
[면책공고] 솜글 블로그 자료 이용 안내

이 글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