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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노트/중국·마카오 여행 URL 복사

상하이 예원(豫园) 설명자료 온라인에서 보기(한국어 가이드)

2021. 12. 30. by 솜글

중국 정원을 대표하는 명소, 예원 내외부의 한국어 설명을 온라인에서 바로 볼 수 있도록 포스팅한다.

이 페이지의 설명은 아래 지도대로 관람하면 순서대로 착착 나오게 되어 있다.

 

온라인에서 보지 않고 출력해서 보고 싶거나 오프라인에서도 보고 싶다면, 아래 페이지에서 PDF 파일을 다운받으면 된다.


예원 豫园

상하이를 대표하는 정원으로 중국어로는 ‘위위안’이라고 읽는다. 면적이 상당히 넓고 40여 개 정자와 연못, 누각 등을 둘러볼 수 있는 쑤저우(蘇州)식 정원으로 유명하다. 당시 중국의 정원 설계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던 건축가 장난양(张南阳)의 작품으로 당대에도 강남 동쪽 정원 중 으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예원은 명나라의 고위 관료이자 당대 최고의 부호였던 판윈돤(潘允端, 반윤단)이 1559년 조성하기 시작해 18년의 공사 끝에 1577년 완성한 곳이다. 명나라 관리였던 아버지의 노후를 위해 조성한 저택이지만 공사가 너무 오래 걸리는 바람에 부모 모두 완공 전에 사망했고, 판윈돤 자신도 이곳에서 몇 년밖에 살지 못하고 병사했다. 

이후 상인이 예원을 매입해 주인이 몇 차례 바뀌었는데, 청나라 때인 1842년 아편전쟁이 일어나자 영국군이 이곳을 며칠 간 점령해 유물을 약탈해 갔다. 홍수전(洪秀全)의 태평천국운동(太平天国, 1851~1864) 때에는 태평천국군이 점거해 기지로 쓰면서 폐허가 됐고, 1942년에도 일본군에 의해 심하게 손상됐다. 그러다가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후인 1956년에야 상하이 시에 의해 보수되어 1961년 일반에 개방됐다. 처음 지어졌을 때 규모는 70개 건물에 면적이 5만㎡에 달했지만, 현재 남은 것은 40개 건물뿐이고 면적도 1만7천㎡이다. 1982년에 중국 국가문화재로 공포됐다.

이용시간 08:30-17:30  입장료 40元(성수기 기준)

중국의 정원 문화

본래 중국에서 정원은 황제를 위한 것이었는데, 상업이 발달한 송나라 때부터 부자들도 저택에 정원을 짓기 시작했다. 정원 예술은 명나라 때 최고 수준에 이르게 되며, 그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것이 바로 예원이다.

중국 정원은 마치 풍경화와 같다. 살아 있는 자연을 통째로 옮겨 놓은 듯한 특별한 예술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거주 공간과 구분해 오직 감상과 사색을 위한 곳으로 기능했고 꽃, 나무, 돌, 연못과 같은 자연 요소들이 정자, 다리, 회랑, 건물 등 건축 요소들과 멋지게 어우러진다. 중국의 옛 정원을 원림(園林)이라고 하는데 원림의 4요소는 산(山), 물(水), 꽃과 나무(花木), 건축(建築)이다.

강남 정원은 이밖에 태호석(太湖石)도 특징으로 하는데, 태호석은 강남의 거대한 호수인 타이후(太湖, 태호) 바닥에서 채취한 거대한 돌을 말한다. ‘가짜 산’이라는 의미의 가산(假山)이라고도 한다. 

<예원 내부>

구곡교(九曲桥)

예원 입구에 있는 연못인 하화지(荷花池, 허화츠)에 놓인 다리이다. 이름처럼 구불구불하게 아홉 번 꺾인 모양을 하고 있다. 직진밖에 못하는 강시의 침입을 막으려고 이렇게 지었다고도 하고, 승천하던 용이 내려와 앉아 다리가 된 것이라는 전설도 있으며, 중국인들이 숫자 ‘9’를 좋아해서 이렇게 만들었다는 말도 있다. 사실 구곡교는 중국 곳곳에 있고 특히 강남 정원에 흔하다. 일본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꺾인 부분마다 계절을 상징하는 수선화(12월), 살구꽃(2월), 복숭아꽃(3월) 등이 새겨져 있고 맨 끝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다. 호심정 바로 앞쪽 부분에는 연꽃과 화려한 구름이 새겨져 있는데 흰색 대리석으로 장식한 연꽃 조각이 매력적이다. 

호심정(湖心亭)

청나라 때 호심정과 지금의 호심정

본래 ‘호심정’이란 호수 가운데 지은 정자를 이르는 일반명사이다. 그래서 중국 곳곳에 호심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자를 많이 볼 수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항저우 서호(西湖)에 있는 것으로 중국 4대 정자로 꼽힌다.

예원 하화지에 있는 호심정은 160여 년 전부터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상하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찻집이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 내외가 다녀간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2층 창가에서 차를 마시면 아름다운 전경을 감상할 수 있으나 값이 비싸다.

해상명원(海上名园) 기념석

정문을 통해 예원에 입장하면 삼수당이 가장 먼저 보이는데, 그 앞에 자연스러운 모양의 육중한 비석 한 점이 서 있다. ‘해상명원(海上名园)’이라고 써 있는 이 기념석은 삼수당 건립 440주년을 맞이해 1999년 당시 국가주석이었던 장쩌민(江澤民, 1926~)이 내린 휘호를 새긴 기념석이다. 해상명원이란 ‘바다 위의 이름난 정원’이라는 뜻이다.

삼수당(三穗堂)

예원 정문 쪽에 위치한 건물로 청나라 건륭제 25년인 1760년 완공됐다. 삼수는 ‘세개의 벼이삭’이라는 뜻으로 풍성한 수확과 길운을 의미한다. 그래서 문에 보리, 밀, 찰기장, 과일이 조각되어 있다. 본래 이름은 원위악수당(原为乐寿堂)으로 ‘삼수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956년에 재건하면서부터이다. 남쪽으로 큰 연못과 인접하고 있어 마치 물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며 앞에 향나무를 심어 놓았다.

삼수당은 옛날에 성황묘에서 주관하던 과거급제자 축하행사를 벌이는 곳이었고, 한때 상하이 정부 청사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황제의 명을 설명하기 위해 마을 상인들을 소집했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상하이 중산층과 상인들의 정치적·경제적 활동지였다고 할 수 있다.

양산당(仰山堂)

삼수당 뒤편에 위치에 대가산과 연못을 사이에 두고 있는 건물이다. 대가산을 바라보고 있어 예원에서도 가장 풍광이 좋은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청나라 때인 1866년 지어졌으며 윗층은 권우루(卷雨楼)으로 불리고 있다.

양산당은 총 다섯 채로 구성돼 있는데, 뒤에 긴 복도가 있고 옆에 연못이 있어 잠시 쉬어가기 좋다. 특히 대가산 풍경을 바라볼 때 연못에 드리우는 그림자가 매우 아릅답다. 비 오는 날 권우루에 오르면 안개가 자욱하고 대가산이 은은하게 보여, 마치 비내리는 산수계곡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원대철사(元代铁狮)와 점입가경(渐入佳境)

원대철사와 점입가경 회랑. 점입가경 가운데 있는 밝은 색 태호석이 바로 미인요이다.

원대철사는 점입가경 회랑 입구를 양쪽에서 지키고 있는 원나라 때 만들어진 두 마리의 사자상을 말한다. 베이징 자금성과 같이 좌자우웅(左雌右雄) 구조, 즉 문을 마주봤을 때 왼쪽에 서 있는 것이 암컷, 오른쪽의 사자가 수컷이다. 암컷이 발로 새끼사자를 누르고 있는 것은 자손의 번성을 의미하고, 숫사자가 공을 밟고 있는 것은 우주를 통치하는 힘을 상징한다. 이 사자상들은 원래 하이난 섬에 있던 것인데, 중·일전쟁 때 일본이 가져갔다가 종전 후 중국의 요청에 따라 반환되었다.

철사자를 지나 회랑을 걷다 보면 가운데 네모난 정자가 보이는데 현판에 ‘渐入佳境’이라고 씌어 있다. 현판 아래에 놓인 태호석은 그 모양이 미인이 허리를 굽혀 주위를 둘러보는 듯하다 하여 ‘미인요(美人腰)’라고 부른다.

대가산(大假山)과 대가산의 정자

예원을 설계한 장난양이 조성한 인공 산이다. 장난양은 강남의 명산들을 둘러본 후 이 산을 구상했고, 저장성 우캉 지방에서 공수해 온 황석(黃石)으로 이 산을 완성했다고 한다. 황석은 태호석 중에서도 가장 값비싼 돌이다. 가로 60m, 높이 14m 규모이며 원석 무게가 무려 2만톤이 넘었을 것이라고 한다. 한때는 상하이를 흐르는 황푸 강이 내려다보이는 명당이었다. 400여 년 간 예원이 수차례 우여곡절을 겪는 와중에도 이 대가산만은 초기의 경관을 잘 보존하고 있다. 대가산이란 ‘커다란 가짜 산’이라는 뜻이다.

대가산에는 두 개의 정자가 있다. 초입 산기슭에 있는 읍수정(挹秀亭)의 이름은 이곳에 오르면 예원의 경치를 다 볼 수 있다는 뜻이고, 산 정상의 망강정(望江亭)은 “정자에 서서 보니, 황포오송(黄浦吴淞)이 모두 발밑에 있다”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대가산의 바닥을 자세히 살피면 작은 돌로 동전 모양과 ‘人(사람 인)’ 자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판윈돤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자신이 돈이 많아서 사람도 밟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상징이다.

췌수당(萃秀堂)과 역방(亦舫)

췌수당(왼쪽)과 역방(오른쪽)

췌수당은 대가산 동북쪽 절벽 아래에 위치한 건물로, 1760년 착공해 10년만에 완성했다. 사방이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에 산등성이와 봉우리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으며, 나무가 무성해 음침하게 조성되어 있다.

췌수당 동쪽 담밖에 위치한 역방은 마치 바다 위에 배가 떠 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선청(船厅)이라고도 불렸다. 명나라 때 이후 강남 정원에는 돌로 배 모양의 건축물을 많이 지어서 물가에서 달을 볼 때 썼다고 한다. 명대 이후에도 이런 건축물들이 많았는데, 이 역방도 그 흔적이다.

어락사(鱼乐榭)

울창한 고목 사이에 자리한 어락사는 이름 그대로 연못의 물고기를 구경하기 좋은 방갈로이다. 건물 주변으로 길지 않은 시냇물이 흐르고 달문과 창이 난 낮은 담이 그 물을 반으로 나누고 있다. 어락사 곁에는 300여 년을 자란 등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초봄이 되면 화사한 보라색 꽃을 피운다.

복랑(复廊)

어락사에서 만화루 쪽으로 멀리 돌아가는 긴 복도를 복랑이라고 한다. 가운데에 있는 네모난 정자의 현판에는 ‘회심불원(会心不远)’이라고 씌어 있다. 복랑의 동쪽 구간은 담을 쳐서 길을 둘러 나누어 놓았는데, 담에 창문이 달려 있어서 왼쪽을 보면 누각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물과 산석이 보인다.

이렇게 두 개의 회랑을 조성해 둔 것은 남녀가 다니는 길을 따로 두기 위해서라고 한다. 해가 더 잘 드는 남쪽이 남자가 다니는 길이었다.

만화루(万花楼)와 400년 된 은행나무

만화루는 봄이면 만 송이의 꽃이 핀다 하여 붙은 이름으로, 가을에는 단풍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판윈돤이 예원을 처음 조성할 때 사원으로 짓고 이름을 만화심처(万花深处)라고 했었는데 당시 절경이었다고 한다. 1840년대에는 제사를 지내는 용도로 쓰여 사람과 신들이 공존하는 곳, 즉 신척당(神尺堂)으로 유명했다가 1950년 이후 만화루라는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만화루는 남쪽으로 연못과 대가산을 마주하며 사면에 회랑을 거느리고 잇다. 회랑의 하얀 담벽이 바위와 푸른 대나무 속에서 운치를 자랑한다.

만화루 앞에는 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하나는 100년, 다른 하나는 400년이나 되었다. 꽃잎이 흩날리는 봄 풍경이 최고라고 하나, 400년 이상 된 은행나무의 단풍을 보는 것도 좋다. 판윈돤이 손수 심은 나무라고 전하며 현재 높이는 약 21m이다.

양의헌(两宜轩)

아래로는 맑은 물을, 위로는 절벽과 같은 봉우리를 모두 마땅히 감상하기 좋은 집이라는 뜻의 이름이다. 글자 그대로 물과 산 양자를 감상하기에 좋다.

용장(龙墙)

천운용장(穿云龍墻) 또는 용벽이라고도 부른다. 벽 장식의 일종이자 예원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축 요소이다. 55m 길이의 담장 위로 꿈틀대며 날아가는 용을 생생하게 표현했는데, 입에 문 여의주와 뾰족한 뿔, 기와를 이용한 비늘까지 섬세한 묘사로 가득하다. 대가산 뒤에 누운 와룡(臥龍), 화순당 서쪽의 쌍룡희주(双龍戱珠) 등 예원 곳곳에서 다양한 용 모양의 담을 볼 수 있다.

당시에 용은 오직 황제만이 쓸 수 있는 상징이었다. 이 때문에 판윈돤은 반역죄에 처해질 뻔했으나, 원래 다섯 개인 용 발톱을 세 개로 만든 후 “원래 용의 발톱은 5개이오나 소신의 정원에 있는 짐승의 발톱은 3개이니, 이무기에 지나지 않을 따름입니다”라고 말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학포(学圃), 고정정(古井亭)

학포(왼쪽)와 고정정(오른쪽)

학포는 연못을 중심으로 고정정 반대편에 위치한 곳으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거나 조용히 책을 읽기 위해 조성한 곳이다.

고정정은 점춘당 북서쪽에 위치한 정자인데 오래된 우물에 지은 정자라는 뜻이다. 정자에 쓰인 연석은 명나라 때 것이다.

점춘당(點春堂)

점춘당의 창틀에는 인물화가 그려져 있고 기둥과 대들보에는 기이한 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점춘당은 소도회(小刀会)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소도회는 청나라 때 태평천국(太平天國)에 부응해 상하이에서 일어난 민간 비밀결사 조직인데, 1853년 9월 상하이 청푸(青浦)에서 처음으로 반란을 시작하고 ‘대명국(大明国)’이라는 이름으로 소도회 정권을 수립했다. 소도회가 처음 반란을 일으켰을 때 본거지로 삼은 곳이 바로 이 점춘당이었다. 반란 후 불과 일 년 반만에 청나라 군대가 이들을 진압했는데, 그 과정에서 점춘당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건물들도 함께 손상됐다. 1949년 이후 상하이 시에서 점춘당을 복원하면서 이곳에 상하이 소도회 기념관을 함께 마련했다. 기념관에는 당시 사용했던 무기와 화폐였던 일월전(日月钱) 등이 전시돼 있다.

'태평통보'라고 각인된 일월전

타창대(打唱台)와 쾌루(快楼)

타창대

타창대는 정교한 조각이 즐비한 이중 처마 지붕을 하고 있으며, 무대 사면의 돌기둥에는 춘하추동 사계절과 연관된 대련이 적혀 있다. 타창대란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곳’이라는 뜻이다. 과거 기생들이 이곳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공연을 했다.

타창대의 봉무란음(凤舞鸾吟)이라는 무대에서는 맞은편의 점춘당이 보인다. 점춘당은 판윈단이 아버지의 회춘을돕고자 기생들을 간택하는 잘소로 쓰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점춘당에 앉아 타창대의 공연을 보다가 기생을 고르면, 인공괴석 위로 날렵하게 서 있는 쾌루에 올라가 함께 밤을 보냈다고 한다.

정의헌(静宜轩)

정의헌과 멀리 뒤쪽으로 보이는 쾌루

화후당 동쪽 벽편에 위치한 자그마한 정자로 연회를 베풀거나 경극무대로 사용하던 곳이다. 정의헌에 있는 인공연못은 경극을 위한 일종의 무대장치로 쓰였다고 한다.

화후당(和煦堂)

연못을 사이에 두고 타창대과 마주한 건물이다. 사면으로 열려 있고 실내에 전시된 가구들은 모두 보리수 뿌리로 만들어져 있어 구멍이 뚫린 독특한 모습을 보여 준다. 뒤에 연못을 배치해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했다. 화후당은 사면으로 열려 있고 실내에 전시된 가구들은 모두 나무 뿌리로 만들어져 있다.

회경루(会景楼)

예원 중앙에 위치한 회경루는 주변 건물, 정자, 기암괴석, 연못, 나무 등이 어우러져 그 이름처럼 모든 ‘풍경이 모여’ 있는 곳이다. 회경루에 올라서면 예원의 전반 경관이 한 눈에 펼쳐져 장관을 이루며 녹나무와 석류나무, 등나무, 단풍나무, 토송 등 온갖 나무를 만끽할 수 있다. 예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다. 2층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지만 내구성이 약한 목조 건물인 탓에 2층에는 올라가 볼 수 없다.

회경루 서쪽 문 위에는 두 마리 용이 수염을 들어올리며 마주보고 있는데, 가운데 공중에 있는 여의주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구사헌(九狮轩)과 유상정(流觞亭)

구사헌(왼쪽)과 유상정

구사헌은 앞에 인공 호수, 인공 계곡, 돌다리가 있어 개인적으로 예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로 꼽힌다.

버드나무잎 멀리로 보이는 유상정은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정자로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적옥수랑(积玉水廊)

‘중국 정원’ 하면 떠오르는 누각과 연못, 다리가 조화를 이룬 회랑이다. 길이가 100m 정도로 중국 강남의 정원 다리 중 가장 길다. 물에 잉어들이 뛰노는 모습과 가지를 늘어뜨린 버드나무 풍경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선사한다. 1986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다녀간 후 수많은 국가원수와 고위 인사들이 이곳을 방문해 왔다. 적옥수랑은 끝 건물인 은도각(听涛阁)으로 이어진다.

함벽루(涵碧楼)

‘남목조화루(楠木雕花楼)’라고도 하는 목재건물이다. 남목조화루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건축의 소재 때문인데, 함벽루는 일반 목재가 아니라 최고 품질의 녹나무(楠木)로 지어진 것이다. 녹나무는 결이 곱고 아름다운데다 내구성까지 좋아 고대에 궁전이나 사원을 지을 때 주요 기둥에 쓰였던 소재이다.

함벽루 양방(梁坊)에는 화려한 매화, 백합, 수선화 등 백 가지 이상의 꽃무늬가 독특한 기법으로 조각돼 있다.

환룡교(环龙桥)

바닥에 청석돌을 깔고 고풍스러운 모양으로 조성한 아치형 다리이다.

옥령롱(玉玲珑)

출구 가까이에 자리한 옥령롱(위링룽)은 예원의 최대 볼거리 중 하나로, 나란히 있는 세 개의 돌 중 가운데 있는 가장 큰 돌이 옥령롱이다. 중국 강남의 3대 태호석으로 꼽히며 높이 3m, 너비 1.8m, 무게는 3톤에 달한다.

크기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자연이 만든 72개의 구멍이다. 제일 위의 구멍에 물을 넣으면 모든 구멍에서 물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구경할 수 있고, 안에서 연기를 피우면 구멍마다 연기가 피어나는 장관을 이룬다.

원래 ‘옥령롱’은 중국 전설에 나오는 돌이다. 송나라 휘종이 정원을 짓고자 전국의 좋은 돌들을 모아오게 했는데 어떤 돌이 운송 도중에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후 사람들은 당시 없어진 돌을 옥령롱이라고 불렀다. 판윈돤이 사들여 온 이 돌이 진짜 옥령롱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옥령롱 뒤쪽에는 조벽(照壁)이 병풍처럼 자리에 옥령롱을 지키고 있다. 조벽에는 ‘寰中大快(환중대쾌)’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 담 주변에 기쁨이 있으라는 의미이다.

'寰中大快'가 조각된 조벽

옥화당(玉华堂)

판윈돤이 책을 읽고 공부하던 서재이다. 공부를 하면서 언제든 옥령롱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옥령롱 맞은편에 지어졌다. 내부에는 명나라 때의 진귀한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득월루(得月楼)

서쪽에 작은 연못이 있어서 달 밝은 밤이면 가장 먼저 달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득월루에 오르면 구곡교까지 보인다고 한다. 1760년 지었다가 소도회의 태평천국 운동으로 크게 손상되어 1890년 중수했다.

장서루(藏書楼)

서예와 그림의 건물로 알려진 곳으로 청나라 때 지어졌다. 청나라 말기인 1909년에 이곳에서 예원 회화·서예 협회가 발족했는데 이후 상하이의 유명 아티스트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다. 지금도 상하이 스타일의 예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위층에는 담소를 나누는 청대 예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장면을 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이중 가운데 탁자에 앉아 있는 인물이 당대 유명 서예가인 마원칭(馬文卿)이다. 주가각에 가면 마원칭의 개인 정원이 남아 있다.

내원(內园) 

예원 출구쪽에는 또 하나의 정원인 내원이 있다. 본래 성황묘의 부속정원이었다가 1959년 재건되면서 예원으로 편입됐다. 때문에 물을 중심으로 하는 예원과는 달리 신성(神性)의 느낌이 든다.

내원을 거닐다 보면 바닥 장식이 사슴 모양으로 생긴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사슴은 복숭아, 학, 불로초, 거북과 함께 도교에서 장수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정관(静观)

내원에는 청설당(晴雪堂)이라고도 하는 본관, ‘정관’이 있다. 내원은 본래 도교 사원의 일부였기 때문에 자연히 건축에 도교적 문화가 깃들어 있다. 정관도 예외가 아니다.

‘静观’이라는 이름은 11세기 북송의 유학자인 정호(程顥)가 지은 시 중 ‘萬物靜觀皆自得(만물정관개자득 ; 만물을 고요히 보노라니 모두 스스로 얻음이라)’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유지하여 그 자연 그대로를 이해함을 뜻하는 말이다.

정관의 지붕에는 남송 때 무장이었던 악비(岳飛, 1103~1142)의 전투를 묘사한 조각이 있다. 내부는 중심부에 두 개의 홀이 딸린 구조로 되어 있는데 하나는 ‘정관’, 하나는 ‘영소정치(灵昭停峙)’라고 한다.

정관 맞은편에는 자세히 보면 목숨 수(寿) 자 모양처럼 보이는 암석정원이 있다. 다른 돌들은 동물의 모습과 매우 비슷한데 박쥐, 사슴 등 무려 100종 이상의 동물의 형상을 찾을 수 있다.

구룡지(九龙池)

네 마리 용을 새긴 바위를 가진 연못이다. 그 네 마리의 용이 물에 비치면 용이 총 여덟 마리가 되고, 연못 전체의 모습도 용을 닮아 또 한 마리의 용이 되니 용이 총 아홉 마리라 하여 ‘구룡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가이관(可以观)과 용취정(耸翠亭)

가이관 내부(왼쪽)와 용취정(오른쪽)

정관 동쪽에는 고요하고 작은 사각형 건물, 가이관이 있다. 당나라 때 무장이었던 곽자의(郭子仪)의 생일 축하연을 조각한 모습이 옆에 있는 용벽과 어울려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중국 민간신앙에서는 영웅들을 신과 동일시하곤 하는데, 곽자의는 생전 부귀영화를 누리고 장수했을 뿐만 아니라 자손들까지 번창해 세속의 복을 마음껏 누렸기 때문에 부귀공명의 상징이 되었다. 가이관에는 내원의 역사와 재건을 기록한 기념석도 있다.

용취정은 정관을 기준으로 동남쪽에 조성된 암석정원에 지은 정자이다. 파도 물결 모양의 이층 구조로 되어 있으며 안에 돌로 만든 탁자와 의자가 있어 정자를 둘러싼 녹음과 잘 어우러진다. 정자 내부에 ‘영목피방(靈木披芳)’이라고 새긴 각석이 있다.

관도루(观涛楼)

소령대(小灵台)라고도 하는 3층짜리 목조 건물로 내원에서 가장 높다. 18세기 기록에 따르면 당시에는 관도루에 오르면 상하이의 유명 풍경인 상하이 팔경 중 하나인 ‘황포추도(黄浦秋涛)’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황포추도는 황푸 강의 바람이 희고 수천 조각의 파도가 쳐서 마치 산처럼 보이는 모습을 말한다.

환운루(还云楼)

연청루와 연결된 건물이다. ‘환운루’라는 명칭은 ‘구름으로 돌아가는 곳’이라는 뜻으로, 청나라 말기의 유명 비문에서 따 온 것이다. 예원이 여러 차례 손상되는 동안에도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건물 중 하나이다. 환운루는 본래 상하이 전업(錢業) 사무소였다.

고희대(古戏台) 

1888년 완성된 거대한 경극 무대로, 강남에서 최초로 정원 안에 조성된 공연무대이다. 7m 규모로 높이 지은 것이 특징이며 무대 앞쪽에 사자, 불사조, 용 등을 정교한 투조로 새겨 금박을 입힌 것이 아름답다.

무대 상단의 돔 안쪽은 22개의 원과 20개의 원호로 이루어져 있으며 28개의 금빛 날개 모양 장식으로 둘러싸여 있다. 고대 무대의 특징인 이 돔은 장식적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무대에서 내는 소리를 더욱 크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돔 안쪽 장식

내부에서 천장을 바라보면 400마리가 넘는 새들이 천장 전체를 덮은 화려한 모습에 눈을 뗄 수 없다. 이는 나무를 조각한 후 칠한 것이다.

무대 양편에 있는 한쌍의 돌기둥에는 ‘天增岁月人增寿云想衣裳花想容’라는 철학적 문구가 써 있는데 상하이 출신의 경극 배우이자 전통극인 곤극(昆劇)의 명인으로 당대에 이름을 날렸던 유진비(俞振飞, 1902~1993)의 필체이다. 상하이에서는 2002년 유진비 탄생 백주년 기념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예원상장 豫园商场

예원 주변에는 예원상장이라는 이름의 상점가가 있다. 상하이의 대표적인 시장인 예원상장에는 명·청대의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상점 1,000여 개가 밀집되어 있다. 중국 전통문화를 체험하려는 관광객들로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룬다. 장신구, 도장, 옥, 차, 다기, 골동품 등을 취급하는 기념품 상점 위주로 상권이 형성되어 서울의 인사동과 비슷한 분위기다. 거리의 노점을 누비며 육즙이 듬뿍 든 샤오롱바오 등 식욕을 자극하는 다채로운 전통 간식도 맛볼 수 있다. 붐비고 왁자지껄한 장소라서 항상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하며 물건을 살 때는 흥정을 하는 것이 좋다.

예원상장의 중심이 되는 곳은 구불구불한 돌다리인 구곡교인데, 구곡교를 등지고 오른쪽 거리로 들어가면 청나라 말기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듯한 모습에 젓가락, 실크스카프 등 갖가지 기념품을 파는 예원노가(豫园老街)가 나오고, 정면 거리로 들어가면 탕바오나 꼬치 등 길거리 음식을 파는 샤오츠거리(小吃街), 즉석에서 공예품을 만들어 주는 민간예인거리가 나온다. 2003년 새로 단장한 성황묘거리(上海老城隍庙)는  문방사우, 도자기, 고전 가구,중약 보건 식품 등에서부터 물고기, 애완동물 까지 없는 물건이 없는 종합시장이다.

예원노가

서양경(西洋鏡, 시양징)

시양징의 본래 이름은 라양폔(拉洋片)으로 중국의 전통적인 민간예술인데, 상하이에서는 ‘서양 안경’이라는 뜻의 ‘시양징’이라고 부른다. 10위안을 내면 3분 동안 연사의 맛깔나는 묘사와 함께 커다란 나무상자 속 그림들을 볼 수 있는, 일종의 소규모 공연예술이다. 배우가 상자 밖에서 실을 당기면 그림이 움직이고 관객들은 그렇게 화면이 변하는 모습을 구경한다.

고기 낚는 대머리 노인의 머리 위에 동자승이 오줌을 누는 장면 같은 것들이기 때문에 중국어를 몰라도 마냥 즐길 수 있다. 연극 배우 같은 연사의 복장과 말투가 재미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시양징은 1940년대까지만 해도 흔한 공연문화였으며,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 예원상장이다.

성황묘(城隍庙)

예원 출구 쪽에 있는 상하이 성황묘는 명나라 때인 1424년 완공했다. 성황묘란 도시의 수호신인 성황신을 모시는 도교 사당을 이르는 말로, 상하이 외 번영했던 다른 도시들에도 대부분 있었다. 각 지방에 관리가 부임할 때는 그 지역 성황묘에 참배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성황신이 전설이나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그 도시에 살았던 실존인물이라는 점인데, 상하이 성황신은 원나라 말기 관료이자 문장가였던 친위보이다. 상하이 성황묘는 청나라 말에 49개나 되는 부속건물을 갖고 있었지만 문화혁명 때 폐쇄됐고, 1994년 다시 개방되면서 10개로 줄어든 모습을 갖고 있다.

상하이 시민들은 지금도 춘절이나 청명절 같은 때면 성황묘를 찾아 기도를 올린다. 성황전보다는 좋은 인연을 바라는 월노전(月老殿)이나 재물운을 비는 재신전(财神殿)에 더 공들여 기도한다.

이용시간 08:30-16:30  입장료 비수기 기준 10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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