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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전(烏鎮) 및 서책 관광지 설명 자료(한국어 가이드)

2019. 9. 8. by 솜글
여행을 앞두고 고민하는 예비 여행자들을 위한 포스트들입니다. 많은 정성을 들인 자료이므로 다른 곳으로 공유하지 마시고 개인적으로만 사용하세요.
*자료가 도움이 되었다면 인사 한 줄 남겨 주세요.

우전(烏鎮) 및 서책 관광지 설명 자료(한국어 가이드)를 공유한다.

앞으로 한국어 가이드는 따로 압축파일로 올리지 않고, 블로에서 바로바로 볼 수 있게 올리려고 한다.

참고로 이 설명 자료는 아래 링크에 올려둔 서책 한국어 지도의 순서대로 되어 있으니 지도를 함께 다운로드해서 코스대로 돌면서 보는 게 좋다.


우전 乌镇

저장 성(浙江省) 퉁샹(铜像) 시의 수향이다. 항저우, 쑤저우, 상하이를 삼각형으로 묶으면 그 중간에 위치하는 전통적인 강남의 수향으로 상하이에서 약 1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수향마을답게 고풍스럽고 아늑하게 느껴지는 수로와 돌다리가 인상적이다. 인구는 6,000명 정도이고 면적은 46.5㎢ 남짓인 작은 마을이며, 양쯔 강의 남쪽에 있는 강남육향의 중심 도시이다. 강남육향이란 저우좡(周莊), 난쉰(南潯), 퉁리(同里), 주자자오(朱家角), 시탕(西塘), 우전 등 수로(水路)가 있는 옛 수향마을 여섯 군데를 일컫는 이름이다. 특히 우전의 아침 풍경은 특유의 물안개와 개천을 청소하는 나룻배의 운치가 극에 달한다.

우전에는 7,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2003년 중화인민공화국 건설부와 국가문물국이 우전 진을 역사문화 명진(名鎭)으로 선정했으며, 2006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다.

우전은 중국 정부가 지정한 최고 등급(5A급)의 관광지이자, 중국인들이 가고 싶어 하는 10대 여행지에 해마다 이름을 올린다. 동책은 2001년에, 서책은 2007년에 관광지로 개발됐다. ‘관광’이 주요 산업인 만큼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2013년에는 우전 희극제가 열렸고 2015년에는 목심(木心) 미술관이 개관하기도 하였다. 2017년에는 커제(柯洁)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국이 열려 더욱 유명해졌으며 같은 해 우전인터넷국제컨센션서 제4회 세계인터넷대회도 개최됐다.

우전의 풍경구

거주지 위주의 남책 풍경구

우전은 경항대운하(京杭大运河)의 스허(市河) 강과 처시(車溪) 강을 중심으로 동책, 남책, 서책, 북책의 4개 구(區)로 나뉘며 공방, 민가, 먹을거리, 상점으로 나뉜 구역과 수향풍경구(水乡风景区)가 있다. 거주지가 주를 이루는 북책과 남책은 관광객들이 잘 찾지 않지만 현지인의 생활상 그대로를 볼 수 있는 곳이며, 동책과 서책은 입장료를 받는다.

서책 야경(왼쪽)과 동책(오른쪽)

서책은 송나라 시대부터 내려온 긴 역사를 자랑하며 동책은 청나라 때 본격적으로 조성되어 채 2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책이 풍경 위주의 관광단지라면 동책은 보다 근대적 성격을 띤 관광지 위주의 장소라 할 수 있다. 건물들은 대개 1층은 점포로, 2층은 거주지로 이용되고 있다. 서책과 동책 모두 평화롭고 여유로우며 ‘동방의 베네치아’라는 수식어와 같이 물의 아름다움을 한껏 느낄 수 있다. 하루 일정으로 우전을 들르는 경우 보통 낮에 동책을 구경하고 해가 지면 서책의 야경을 감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숙박을 한다면 동책의 아침 풍경이 더 나으니 동책에서 묵는 것이 좋다.

우전과 물

우전은 물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현지인들이 쓰는 표현으로 ‘피부를 감싸는 물’과 ‘물을 감싸는 피부’가 있는데, 찻집에서 차를 마시는 것과 욕조에서 목욕하는 것을 빗댄 말이다. 우전 주민들에게 차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문화이고 무려 60개 이상의 찻집이 있다고 한다. 특히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찻집이 사람들이 소통하고 소식을 나누는 장으로 기능했다.

무신미술관(木心美术馆)

화가이자 작가인 무신(木心, 1927~2011)의 평생에 걸친 예술적 유산을 전시하기 위해 조성된 미술관이다. 무신의 고향 우전에 4년 간의 공사를 거쳐 2015년 마련됐다.

무신은 어릴 때부터 그림과 문학, 작곡을 즐기는 총명한 아이였다. 열두 살에 이미 시를 쓰고 16세 때는 지역신문에 수필이 실릴 정도였다. 상하이미술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중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일했으며, 세 차례 투옥되는 동안 감옥에서 문학작품을 썼다. 20편의 1984년 뉴욕으로 이주해 작품활동을 이어가며 30여개작을  발표했으며 2001년에는 lgeogkrry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고 시카고 박물관, 하와이 예술박물관, 뉴욕 아시아 예술가 갤러리에도 초대됐다.

무신미술관에는 600점이 넘는 그림과 수천 점의 문학작품 친필 사본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림 100여 점과  50점을 엄선해 상설 전시하고 있다. 중국 현대미술에 관심이 많다면 들러볼 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조경도서관(景观图书馆)

무신미술관에 2015년 11월 개관했다. 우수한 건축디자인과 독서 환경을 제공해 젊은 예술가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무신미술관의 건축에 참여한 건축가들이 설계에 참여했다고 한다. 문학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전시실에는 무신의 원고와 두루마리들을 포함한 전시품들이 있으며 특별전시실에는 독일 철학자 니체의 원고도 있다.

선박문화장랑(舟楫文化长廊)

1.7m 높이, 30m 길이의 대나무벽으로 조성된 길이다. 베이징에서 항저우를 잇는 경항대운하(京杭大运河)의 역사와 기능, 갖가지 선박의 모양을  대나무 위에 그려 놓아 강남수계와 운하의 물 문화와 선박 문화를 생생하게 알려 준다. 

남북을 이어주는 대운하는 7세기 수나라 양제 때 본격적으로 조성이 시작됐는데, 건설이 마무리되자 당시 중국의 곡창이었던 우전은 전례 없는 번영을 누리게 되었고, 선박을 중심으로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당나라 이후 강남 선박의 형식, 기능, 등급과 규모가 발달한 것은 대운하 건설에 호응한 덕분이다.

초목본색염방(草木本色染坊)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강남 지역의 염색기술을 보여 주는 염색공방으로 규모가 상당하다. 강남 염색은 남색 무늬천이 대표격인데, 이곳에 이르면 쪽빛으로 물들어 나부끼는 염색천들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초목염색작방은 염색의 모든 과정을 시연해서 보여 주고 일부는 직접 체험해 볼 수도 있다. 물론 완제품을 쇼핑하는 것도 가능하다. 초목염색은 우전 지방의 찻잎, 뽕나무 껍질 등에서 색을 얻어 사용해 도안에 맞게 천에 색을 입혀 이루어지는데 모든 과정에 수공업으로 이루어진다. 초목염색은 일찍이 진한 때 시작되어 송나라, 원나라 대에 발전했으며 청대에 이르면 크게 유행한다. 지금은 우전과 남통(南通)에서만 생산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강남 전 지역에서 옷, 머리수건, 앞치마, 이불, 심지어 모기장에까지 쓰일 만큼 인기였다.

염색 과정을 시연하는 모습

초목염색 중에서도 남색 꽃천은 남초(蓝草)를 원료로 쓴다.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수확한 남초를 돌항아리에 며칠 간 숙성시킨 후 썩은 부분을 버리고, 석회가루와 조개껍데기가루를 넣고 중화시킨다. 이렇게 하면 침전물이 생기는데 이 침전물 염료는 마치 흙과 같은 질감이어서 투딩(土靛)이라고 부른다. 이 염료로 천에 풀을 먹이는데, 풀은 석회가루와 콩가루를 같은 비율로 섞어 만든다. 꽃무늬를 새기는 무늬판은 뽕나무 껍질로 만든다.

서시하(西市河)

우전을 대표하는 물길이자 서책을 가로지르는 중심 수로이다. 유유히 흐르는 물길에는 항상 관광객들을 태운 나룻배가 오가며 고풍스러운 우전의 분위기를 한층 더해 준다.

청경교(晴耕桥)

청경우독(晴耕雨讀)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맑은 날엔 밭을 갈고 비 오는 날엔 책을 읽는다는 뜻이다. 우전 농부들 역시 맑은 날이면 들에서 농사를 짓다가 비가 오는 날에는 공부를 하러 다리로 모여 공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맑은 날’을 뜻하는 청경교에는 정자가 없고, ‘비오는 날’을 뜻하는 우독교에는 공부할 때 비를 맞지 않도록 지붕이 달려 있다.

용형전(龙形田)

와룡(卧龙), 즉 누운 용의 모습과 같은 들판이라 하여 용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런 모양은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서시하의 물결이 만들어낸 자연적인 결과물이라고 한다. 용형전에는 사계절마다 다른 작물을 심어 놓는데, 주변에 맑은 물줄기가 있어 여름에 더러워지지 않고 겨울에도 물이 부족하지 않다. 용 모양의 북쪽 경사면에는 큰 흰색 국화가 있는데 10월에 만개한다. 물의 고장 우전에서 농사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월로묘(月老庙)

전세계 내로라 하는 관광지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아마 사랑을 기원하는 장소일 것이다. 중국에서 주로 그 기능을 담당하는 곳은 바로 월하노인을 모시는 사당인 월로묘이다.

동아시아 지역에는 일명 ‘운명의 붉은 신’이라는 미신이 널리 믿어지고 있다. 당나라 시대 이복언이 지은 <속현괴록(續玄怪錄)>에 등장하는 월하노인(月下老人) 이야기가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언젠가 맺어질 남녀는 보이지 않는 운명의 붉은 실로 서로 이어져있다는 믿음으로, 월하노인이라 불리는 노인이 있어 그가 붉은 끈으로 발목을 묶은 남녀는 아무리 원수지간이라 하여도 반드시 맺어진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우전 월로묘 문 앞에 연리수(连理树)라는 큰 나무가 있고 나뭇가지마다 빨간 리본이 가득 매달려 있는데, 리본에 사랑을 기원하는 글을 적어 걸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나무뿐만 아니라 울타리, 담장, 벽 등이 온통 빨간 리본으로 가득하다. 약간의 돈을 내면 리본에 소원을 써서 걸어둘 수 있다.

백련사(白莲寺)와 백련탑(白莲塔)

백련사는 백련탑(乌镇白莲寺塔)이 있는 사찰이다. 우전은 흔히 ‘1개의 전망, 2개의 탑, 9개의 사찰’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두 탑 중 하나가 이 백련탑으로, 우전에서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본래 백련탑은 송나라, 원나라 시대에 벽돌과 나무를 재료로 지은 것이다. 복원된 흰 연꽃탑은 외형이 방추형으로 되어 있으며 각 변 24m의 사각형의 층을 쌓아올린 모양을 하고 있다. 안쪽은 벽돌로 되어 있다. 1층에서 탑에 오르면 서책 운하와 우전 경관을 만끽할 수 있다. 다만 실제로 올라가 볼 수 있는 것은 3층까지여서 고층 전망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밤이 되면 탑 층층이 아름다운 조명이 비춰 더욱 아름답다.

문창각(文昌閣)

도교에서의 학문의 신, 문창제군(文昌帝君)을 모시는 사당이다. 문창제군은 문창성, 즉 북두칠성 중 여섯 개의 별로 이루어진 별자리를 신격화한 것이다. 문창성에는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문창부(文昌府)라는 관청이 있고, 문창제군은 천제로부터 문창부의 장관으로 임명되었다고 전한다. 본래 문창제군은 황제의 아들로 인간계에 몇 차례 내려왔었는데, 마지막으로 태어났을 때 이름이 장악자(張惡子)였다고 한다.

문창제군은 이름에 ‘문(文)’자가 있다 하여 점차 학문의 신으로 성격이 바뀌었고, 과거를 보려 하는 선비들은 시험을 앞두고 이곳에 와서 제사를 올리곤 했다. 청나라 왕조가 끝나고 과거제도가 폐지되자 문창각은 마을의 놀이장소가 되었으며, 동시에 마을 주민들에게 소식을 보급하는 중심지로 기능하게 됐다.

여의교(如意桥)

카페거리 근처에 있는 여의교는 백련탑을 본떠 지은 다리로 서책의 다리 중 가장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휘어 있어 C자 형태를 띠며 양쪽 끝에 정자가 있다. ‘여의’란 일이 뜻대로 풀린다는 의미이다. 지붕이 나무로 덮여 있어 비가 내리는 날에 사람들은 종종 이곳에 모여 탁 트인 전망을 즐기며 담소를 나누곤 했다.

관제묘(关帝庙)

문창각 바로 옆에는 중국의 가장 대중적인 도교신, 관우(關羽, ?~219)를 모시는 관제묘(關帝廟)가 있다. 내부에 거대한 관우상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삼국시대 촉나라의 장수였던 관우는 중국에서 가장 추앙받는 인물 중 하나로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대만, 일본 등지에도 관제묘가 들어서 있다. 남송 때 악비(岳飛)가 등장하기 전까지 중국 사서에서는 ‘용맹한 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관우를 들 만큼 충성심와 용맹스러움의 상징이다.

관제묘의 관우상

관우는 중국에서는 특히 관우가 부를 가져다준다 하여 상인들의 수호성인으로서 기능하기도 했다. 우전은 명나라와 청나라 때 번성하고 무역이 빈번해서 마을에 부유한 상인과 사업가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우전에 올 때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관제묘를 조성했고, 여느 관제묘가 그렇듯 관우의 위패 좌우에는 관우의 아들인 관평(關平, 178?~219), 관우의 심복인 주창(周倉)의 위배를 두었다. 사실 주창은 실존인물은 아니고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만 등장하는 소설 속 등장인물이다.

남당교(南塘桥)

서책대가의 서쪽 끝에 위치하며 서시하를 남북으로 잇는 다리이다. 길이 28.2m인 돌다리로 남북 양쪽에 연꽃, 춘란, 도교의 태극도 등이 새겨져 있다. 이런 무늬는 행운을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다리 중심에는 육도윤회(六道轮回)를 상징하는 수레바퀴 무늬가 새겨져 있다. 육도윤회란 불교에서 현생에서의 인과응보에 따라 다음 생에 천인이 되거나, 인간이 되거나, 아수라가 되거나, 가축이 되거나, 귀신이 되거나, 지옥에 떨어지는 여섯 가지 중 하나의 길이 정해지는데, 이것이 수레바퀴와 같이 끊임없이 돈다는 뜻이다. 남당교의 윤회 문양은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윤회를 다시금 마음에 새겨 현생에서 좋은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 새긴 것이라고 한다.

교리교(橋里橋) : 통제교(通济桥)·인제교(仁济桥)

우전 마을 곳곳의 물 위에는 당연히 다리도 많다. 우전에는 원래 다리가 120개나 있었는데 오늘날까지 남아 내려오는 다리는 30여 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통제교와 인제교 두 다리로, 서로 90˚ 각도로 이어져 있어 어느 쪽에서 보든 한 다리 밑에서 다른 다리를 볼수 있다. 그래서 이 두 다리를 다리 안에 다리를 품었다는 뜻에서 교리교(橋里橋)라고 부른다. 우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꼽힌다. 아치형으로 쌓인 높은 이 두 다리에 올라서면 모두 교각을 통해 상대편 다리가 한눈에 보여 물 위에 비친 아치의 모습이 마치 우물 속에 비친 달을 연상케 한다.

통제교(通济桥)

길이 29.4m로 처음 지어진 것은 언제인지 알 수 없으나 명나라 때인 1515년에 최초로 재건됐다는 기록이 있고, 이후 여러 차례 재건을 거쳤다. 청나라 건륭제 때를 배경으로 한 중국 드라마 <충신 유통훈(원제 : 天下粮仓)>에서 주인공 남녀가 만나는 장면의 촬영지로 잘 알려져 있다. 우전은 드라마의 단공 촬영지이다.

인제교(仁济桥)

길이 22.6m이며 다리 밑에 나무문이 있어서 밤에는 문이 닫히도록 하여 도둑이 마을로 출입하는 것을 막앗다. 1518년에 한 번 개조됐으며, 전쟁 때 파괴된 것을 1734년에 한 번 재건했다. 지금의 다리는 19세기 후반 청나라 때 재건된 것이다.

국립극장(国乐剧院)

서시하 중심부에 위치한 국립극장은 우전의 민속극을 공연하기 위한 곳이다. 물 위에 지어졌다 하여 수상희대(水上戏台)라고도 부른다. 현대에 재건축할 때 고대 극장에 있던 나무조각 등을 보존하고 현대 연극도 공연할 수 있도록 개조했다고 한다. 200~300명 정도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

옛 우체국(中国邮政)

청나라 광서제 연간인 19세기 말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이다. 옛 건물뿐인 우전에서 동서양의 건축이 조화된 모습을 보여 주는데, 특히 앞에 놓인 옛날식 우체통이 이채롭다. 이곳은 지금도 우체국의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엽서를 사서 원하는 곳으로 보낼 수도 있다. 엽서는 한 묶음에 20元 정도이다.

삼촌금련관(三寸金蓮館)

서책에 있는 중국 최대의 전족 박물관으로 2008년 문을 열었다. ‘삼촌금련’은 ‘세 치의 황금 연꽃’이라는 뜻으로 전족의 다른 이름이다. 이곳에는 중국 각지에서 모인 825쌍의 전족 신발들과 관련 그림, 어린 소녀에게 전족을 하는 장면을 재현한 모습, 발을 묶는 기구 등이 전시돼 있다. 30분 내외면 모두 둘러볼 수 있다.

전족은 어린 여자아이의 발을 천으로 꽁꽁 동여매 일정 크기 이상으로 자라는 것을 막는 중국의 풍습, 또는 그 풍습으로 인해 만들어진 작은 발을 일컫는 말이다. 북송 때부터 1000년 이상 지속됐으며 20세기까지도 성행했다. 연원은 확실치 않지만 신발 유물이 발견된 연대를 살펴보면 북송 때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물론 전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부유한 집안의 여성이나 기녀에 한정된 일이다. 발이 큰 여성을 천지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전족은 일종의 특권의 상징으로 볼 수도 있다.

삼촌금련관의 전시품

북송 당시의 전족은 그냥 발을 조여 매서 작게 만든 정도였다고 한다. 1900년 전후 전족이 아예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발가락들을 발바닥쪽으로 꺾어 버린 후 묶는 풍습이 됐음을 생각해 보면, 전족은 시대가 지남에 따라 그 정도가 극악하고 잔혹하게 심해진 문화라 할 수 있다. 발의 크기는 점점 작아져 ‘세 치는 금 연꽃, 네 치는 은 연꽃, 다섯 치는 철 연꽃’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세 치는 약 10cm이다. 전족한 발은 신부가 마련해가는 최고의 예물이었고, 여성의 제3의 성기로까지 여겨졌다. “남자들의 질펀한 연회를 위해 마련한 한 접시의 안주”라는 말까지 있었다.

복안교(福安桥)

복안물길(福安水巷) 끝자락에 위치한 복안교는 길이 12.5m의 평지교로 4개의 긴 돌로 구성되어 있다. 교량 양측에 돌로 만든 계단이 있어 다리 위에 오를 수 있으며 전체적으로 간단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마을 주민들이 이 다리 밑에서 쌀이나 채소를 씻고 빨래를 했다고 한다. 마을 여성들이 모이는 장소였던 셈이다.

우독교(雨读桥)

빗속에서 책을 읽는 다리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우독교는 길이 10.25m, 너비 3.74m의 돌다리이다. 다리 위에 나무 창이 달린 정자가 조성돼 있어 마치 다리 이쪽과 저쪽을 잇는 또 하나의 건물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청경우독(晴耕雨讀)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맑은 날엔 밭을 갈고 비 오는 날엔 책을 읽는다는 뜻이다. 우전은 예로부터 학구열이 높은 고장이어서, 농부들은 맑은 날이면 들에서 농사를 짓고 비가 오는 날에는 농삿일을 할 수 없으니 공부를 하러 이곳 다리로 모였다고 한다. 그래서 우독교에는 공부할 때 비를 맞지 않도록 지붕이 달려 있고, 반대로 농삿일의 의미를 담은 다리인 청경교에는 정자가 없다.

소명서원(昭明书院)

남북조 시대 양나라의 소명태자(昭明太子)가 공부하던 곳이라 하여 소명서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다. 현재도 서책을 보관하는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아름다운 경내를 자랑한다. 꼭 내부까지 들러보길 권한다.

소명태자는 이곳에서 스승들과 학문에 열중했는데, 그 덕분인지 중국 최초로 시가산문전집을 정리했다. 소명태자의 전집은 이후 많은 선비들에게 읽히게 된다.

황비홍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라이즈 오브 레전드 : 황비홍>(2014년작)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방생교(放生桥)

서시하 중간 구역에 위치한 방생교는 17.4m 길이로 직사각형 물길을 두어 모양이 독특하다. 다리 위에는 4개의 긴 돌조각이 깔려 있다. 명나라 때인 1600년 전후 처음 만들어졌고 청나라 건륭제 때인 1800년 전후로 두 번 재건됐다는 기록이 전한다. 다리 북쪽 기슭에 강으로 확장되는 돌계단이 있다. 옛날에는 음력 4월 초파일 부처 탄신일, 7월 30일 지장보살 탄신일에 지역 주민들이 이곳에 와서 어류를 방생했다 하여 방생교라는 이름이 붙었다.

희경당(囍庆堂)

강남 지방의 전통 혼례와 혼례식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전당(前堂). 혼례당(婚礼堂). 의사당(议事堂). 교청(轿厅). 후당(后堂). 삼존당(三尊堂). 채루(彩楼). 통방(洞房). 후화원(后花园)의 8개 전시관으로 구성돼 있어 전통혼례를 순서대로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혼례식뿐만 아니라 혼례에 쓰인 지참금, 가구, 혼례가마와 같은 소품, 의상, 예물 등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강남 수향답게 우전에서는 신부가 가마를 타기 전 화려하게 꾸민 배를 타고 오기도 했는데, 희경당에는 그 배도 보관돼 있다. 현대로 치면 ‘웨딩카’인 셈이다. 혼례복을 입고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체험장도 마련돼 있어 방문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신랑과 신부가 가마를 타고 신랑집에 도착하면 신랑이 먼저 가마에서 내려서 잠시 문밖에서 신부를 기다리다가 신부에게 함께 집으로 들어가자고 권한다. 붉은 천을 머리에 덮은 신부는 집안에 들어가 먼저 천지에 절을 올리고, 다음으로 시부모님과 신랑에게 차례로 절한 다음 신랑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면 신랑이 신부 머리에 덮인 천을 들춰서 깔고 앉았다. 신부가 가져온 악한 기운을 없애는 의식이었다. 식이 다 끝나면 신랑과 신부는 통방의 침실에서 초야를 치르고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다.

희경당의 통방

한반도에서도 그렇듯, 중국에서 혼인은 가문의 대를 잇는 중요한 행위로 여겨져 왔다. 중국에서는 고대에 남성이 결혼하는 행위를 과거에 급제한 것과 같이 기쁜 일이라는 뜻에서 ‘소등과(小登科)’라고 했다. 또 여성이 결혼하는 것은 ‘급계례(及笄禮)’라고 하여 머리를 감아 올리고 비녀를 꽂는 의식이라고 칭했다. 급계란 만 15세를 일컫는 말로, 여성이 시집갈 나이가 됐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경행교(景行桥)

송가교(宋家桥)라고도 하는 경행교는 16.2m 길이의 단일 아치 석조다리이다. 과거에는 평등교(平等桥)로 알려졌다가 송씨 가문과 관련이 있다 하여 송가교라는 이름을 오랫동안 사용했다.

청나라 건륭제 때 재건되면서부터 경행교라고 불렸고 현재 다리에도 경행교라고 새겨져 있다. 경행교 북쪽에는 서책으로 진입하는 배를 타는 선착장인 안도방(安渡坊)이 있다. 경행교는 북으로는 나루터를, 남쪽으로는 마을을 마주하고 있고 지류의 교차점에 위치하기 때문에 특히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그래서 이 다리에 경(景, 경치 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통안교(通安桥)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알려지지 않은 아치형 다리이다. 기록에 따르면 청나라 때 재건됐다고 하며, 길이 16.4m이다. 유구봉교(又叫丰桥), 풍교(枫桥)라고도 부른다.

통안교에는 불교의 윤회 사상을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다. 중심점에서 여섯 단계를 거치며 바깥쪽으로 점점 확장되어 수레바퀴 모양을 형성하는 문양이다. 다리 뒷부분에는 청나라 때는 1842년 지역에서 다리 재건을 위해 기증받은 내역이 희미하게 조각돼 있다.

서창장원(叙昌酱园)

우전 출신의 도서창이라는 사람이 1859년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세운 전통 장 공장이다. 마당에 가득한 항아리에 장이 담겨 있는데, 우리 항아리와 달리 항아리에 면보를 씌운 다음 그 위를 대나무로 만든 검정색 광주리를 덮어 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나무 광주리는 직사광선을 막고 바람이 잘 통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장원 옆에는 식당이 있어서 장을 활용한 요리들을 먹어볼 수 있으며 전통 장을 시식해 보거나 살 수 있다.

서창장원의 마당 풍경

여느 고장이 다 그렇듯 우전에서도 일 년 먹을 장을 담그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는데, 매년 봄가을마다 이웃마을에서 좋은 콩을 사다가 푹 찐 후 밀가루를 섞어 메주를 만들었다. 메주를 발효실에서 사흘 간 발효시킨 다음 반 년 동안 자연건조하면 장이 완성된다.

역창야방(亦昌冶坊)

명나라 때 문을 열어 400년 넘게 이어져 온 대장간이다. 불씨가 튀어도 화재가 일어나지 않도록 내부 기둥은 모두 돌로 만들어져 있으며, 명대 전통방식 그대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역창야방에 생겨날 무럽 이곳은 저장성 서부에서 유일한 가내 대장간이었고, 우전의 금속 제련술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장간 집안 사람들은 꽤 부유한 삶을 누렸다.

천하제일과(왼쪽)와 손맷돌(오른쪽)

내부에 들어서면 거대한 반구 모양의 거대한 솥을 볼 수 있는데, 청나라 때 장인 열두 명이 두 달을 꼬박 들여 만든 솥으로 무게가 3톤이 넘는다고 한다. 이 솥은 당시 실제로 음식을 지었던 솥으로, 여기에 음식을 해서 가난한 주민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때문에 이 솥은 규모로 보나 담긴 이야기로 보나 천하 제일의 솥, 즉 ‘천하제일과(天下第一鍋)’라고 불린다.

솥 뒤쪽으로 가면 바닥에 그릇의 본을 뜨던 거푸집이 있고 맷돌, 절구, 제철틀 등 과거 사용하련 제련 도구들이 전시돼 있다. 내부의 2층으로 올라가면 무쇠솥, 찻주전자, 철공예품 등을 전시하는데 창밖을 내다보는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잔교(栈桥)

과거 우전은 대운하가 건설된 이후 교역의 요충지였다. 그중에서도 잔교에서는 매일아침 수상시장이 열려 주민들이 각자 가꾼 곡물과 야채, 생선 등을 팔러 나왔고 이곳은 우전을 대표하는 시장으로 점차 규모가 확대됐다. 관광지역으로 바뀐 지금도 잔교에서는 수상시장이 열려 과일과 채소 등을 팔러 나온 배들을 구경할 수 있다.

만흥교(万兴桥)

중간 구역에서 서시하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다리이다. 길이 19.7m의 아치형 돌다리이다. ‘만물이 흥한다’는 이름에서 옛 우전 사람들이 이 다리에 빌었던 사람들의 생계와 행복한 삶에 대한 열망을 알 수 있다.

마오둔기념관(茅盾纪念堂)

우전 출신의 공산주의 소설가 마오둔(茅盾, 1896~1981)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으로 생전 마오둔의 거주지의 모습을 살려 조성됐다. 마오둔의 일생과 문학적 방향을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 왼쪽에는 마오둔이 공부했다는 연구실이 있다.

마오둔은 중국 최고의 장편소설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본명은 선더홍(沈德鴻)이지만 1927년 소설 <환멸>을 발표할 때부터 마오둔이라는 필명을 섰다. 우전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북경대학교 문과 시절부터 소설과 비평을 쓰다가 졸업 후 문필활동을 하며 공산당에 가입했다. 1949년 공산당 정권이 수립된 후에는 전국문학예술가협회 부주석, 전국문학공작자협회 주속으로 활동했으며 문화부 장관에 임명되기도 했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 장관직에서 해임된 후부터는 공식 활동을 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자야(子夜)>, <서리 내린 붉은 잎을 2월의 꽃과 같구나> 등이 있다.

마오둔 고거(왼쪽)와 응가교(오른쪽)

마오둔기념관 외에도 우전에는 그와 연관된 곳이 많이 있다. 동책 초입에는 마오둔의 옛집인 마오둔 고거(茅盾故居)가 있으며, 역시 동책쪽에 있는 응가교(应家桥)는 그가 어릴 때 자주 와서 놀았다는 곳이다.

영수거(灵水居)

총면적 2만㎡로 서책에서 가장 큰 원림건축이자 우전의 역사적인 문화 명인들의 전시관이 모여있는 물의 정원이다. 영수거란 ‘영혼이 쉬어가는 정원’이라는 뜻인데, 그 이름처럼 우전의 옛 정취가 느껴지는 수상가옥들과 숲 속의 작은 호수는 사람들에게 완벽한 휴식을 제공한다.

원림건축은 자연을 정원 안에 형상화시켜 놓은 것으로 고대 중국 조경 미학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영수거 역시 그 수려하면서도 소박한 오솔길을 거닐다 보면 향긋한 숲 내음과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와 중국 휴양지의 매력을 느끼게 해 준다.

공령경기념관(孔另境纪念馆)

우전 출신 작가 공령경(孔另境, 1904~1972)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다. 공령경은 1925년 공산당에 가입한 혁명가 겸 소설가로 훗날 항저우 군위원회의 부서기를 역임한 인물이다.

공경령기념관은 강남 양식의 건물에 조성되어 호수를 마주한다. 면적은 약 300㎡이다. 공령경을 기리는 약 120점의 물건, 70장의 사진, 21개의 전시판이 전시되어 있으며 30분이면 다 둘러볼 수 있다.

정승교(定升桥)

24.1m 길이의 아치교로 서책에서 가장 큰 다리이다. 정승교의 이름은 이 지역의 관습과 관련이 있다. 옛날 이곳 어린이들이 처음 학교에 가는 날에는 각자 집에서 가장 좋은 장원고(状元糕, 쌀가루에 사탕을 섞어 모양을 찍어낸 찐과자)를 이 다리로 가져왔는데, 가장 좋은 장원고는 곧 장원급제를 우의적으로 상징한다. 아이들이 장원급제를 상징하는 장원고를 가지고 서책에서 가장 높은 다리 위로 돌라가게 해서 미래에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를 기원한 것이다. 이러한 전통에서 ‘정상에 오르다’라는 뜻의 ‘장원(定升)’이라는 이름으로 다리 이름이 붙여졌다.

장원고

평안교(平安桥)

작은 아치형 돌다리로 여홍가(女红街)에 위치해 있다. 리조트 방면을 이어주는 다리여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다. 다리에는 엉뚱하게도 ‘평안교’가 아니라 ‘신풍교(新枫桥)’라고 새겨져 있는데 왜 이런 이름이 새겨져 있는지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는다.

함녕교(咸宁桥)

길이 18m의 함녕교는 원래 나무다리였던 것을 나중에 석조 다리로 다시 만든 것이다. 최초로 지어진 것이 언제인지 전해지지 않는다. 옛날에는 함녕교 남쪽에 야방(冶坊), 즉 대장간이 많이 자리했기 때문에 이 다리를 야방교(冶坊桥)라고도 불렀다.

우전의 제철·제련 기술은 명나라 때 서책에서 시작되어 청나라 시대가 되면 남책을 중심으로 크게 번창한다. 당시 우전의 대장간에서는 향로, 촛대 등 가정에서 쓰는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소총 부품 같은 무기류까지 생산할 만큼 기술 수준이 높았다. 함녕교는 그러한 우전 제철의 역사를 함께 한 다리라고 할 수 있다. 다리 동쪽과 서쪽에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너무 오래되어 희미하고 일부만 판독 가능하다.

오장군묘(乌将军庙)

당나라 때 장수 오장군을 기념하고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오장군은 우전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외세의 침입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다고 전한다. 그의 사후 우전 주민들은 그의 애국심과 용맹을 기리기 위해 오장군묘를 짓고 지역의 수호신으로 삼았다.

오장군묘는 총 3,600㎡ 면적에 소정됐으며 오장군을 모신 사당이 있다. 오장군 뒤에는 그의 시동(书童)이 있고, 양쪽에는 불의 신과 물의 신이 있다.

잠성교(蚕圣桥)

다리 위에 지붕 달린 목조 정자인 잠성정(蚕圣亭)이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 다리이다. 지붕은 고대 양식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꼭대기에는 첨탑이 있다.

잠성교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있다. 오래전 백마장군(白马将军)이 전투에 나갔다가 양쯔강 남쪽으로 퇴각했는데, 굶주림이 길어지자 병사들이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될 지경이었다. 그러자 장군은 자신의 애마인 백마를 죽여 그 고기로 병사들의 배고픔을 달래 주었고 병사들은 다시 힘을 얻었다. 그러나 말을 타고 싸우는 것에 익숙했던 백마장군은 전장에서 부상을 입고 말았고, 적군에 포로로 잡히는 치욕 대신 가죽만 남은 백마 가죽로 몸을 감싸고 죽었다고 한다.

나중에 적들은 우전 땅에서 흰 말가죽을 발견해서 열어봤는데, 안에서 수천마리의 나방이 나왔다. 나방들은 우전에 뽕나무를 번식하게 했고, 우전 사람들은 누에를 치며 실크를 얻을 수 있었다. 백마장군의 신성함을 기념하기 위해 사람들은 다리를 짓고 이름을 잠성교, 즉 누에 성인의 다리라고 지었다. 그리고 매년 양잠 기간마다 누에를 치는 양잠농들은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

백마장군의 이야기 외에도 중국에서는 누에의 유래에 대한 전설이 여러 가지 버전으로 있는데, 공통점은 누군가가 백마 가죽에 몸을 휘감았고 그 안에서 누에나 누에나방이 나왔다는 것이다. 한자로 누에를 蠶(잠)이라고 하는데 이 한자는 ‘감싸다’라는 의미의 글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익대사호(益大丝号)

청나라 때인 1875년 심영창(沈永昌)에 의해 마련된 양잠공방이다. 양잠 과정과 누에고치를 수확하는 모습, 누에실 뽑기 등 비단을 뽑는 여러 가지 과정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지금도 수작업으로 전통방식 그대로 실을 뽑고 2인 1조로 물레 비단을 짜고 있어 우전의 양잠문화를 엿볼 수 있다.

중국의 양잠과 비단직조공예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만큼 그 역사가 오랜 기술이다. 중국에서도 특히 상하이와 쓰촨성, 그리고 우전이 있는 저장성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중국에서는 누에의 일생이 인산의 삶과 죽음, 환생을 보여준다고 여기기도 했다. 마을 곳곳에 있는 연못에 누에의 배설물을 뿌리면 그것이 물고기의 먹이가 되고, 물고기가 사는 그 연못에서 난 진흙은 뽕나무의 비료가 되며, 뽕나무 잎은 다시 누에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익대사호 본관 출입문(왼쪽)과 물레로 비단을 짜는 직원(오른쪽)

과거 중국에서 양잠은 농사보다 수익성이 좋았고 특히 여성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산업이었다. 동아시아 봉건사회에서는 사농(士農)보다 공상(工商)을 천시했지만, 물산이 풍부한 강남수향 사람들은 농업과 상업을 병행해 중상(重商)의 문화를 형성했다. 옛날 우전에 있는 양잠농가들은 청명절(양력 4월 5일)과 곡우(양력 4월 20일) 때마다 누에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지낼 때는 누에꽃 천사 역할을 맡은 사람이 개미누에 모양의 옷을 입고 현장을 한 바퀴 순행한 다음, 무대에 올라 꽃을 뿌리면서 누에농사의 풍년과 건강한 뽕나무의 성장을 기원했다고 한다.

수극장(水剧场)

중국어로 ‘쉐이지창’이라고 읽는다. 물가를 중심으로 야외에 조성된 무대라 해서 흔히 수상극장(水上剧场)이라고도 부르며 전체적으로 원형극장의 형태를 띤다. 석판으로 된 좌석은 최대 2,3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항상 공연이 열리는 것은 아니지만 무대 뒤로 탁 트인 전망을 마주하고 자박한 관중석에 앉아 한가롭게 다리를 쉬기 좋은 곳이다.


이 설명 자료는 아래 링크에 올려둔 서책 한국어 지도의 순서대로 되어 있으니 지도를 함께 다운로드해서 코스대로 돌면서 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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