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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테마 92. 김지하

2022. 1. 15. by 솜글

김지하의 생애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김지하(金芝河, 1941~)는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는데, 본명은 영일(英一)이다. 그의 증조부는 동학 운동을 하다가 숨졌고, 할아버지는 피신한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1950(10) 김지하는 어린 나이에 한국 전쟁의 비극을 겪는데, 이 체험은 훗날 그의 초기 대표작 <황톳길>로 형상화된다.

1953(13)에는 목포 산정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목표중학교에 진학하는데, 이듬해 아버지가 영화관 기사로 취직하면서 강원도 원주로 이주하여 원주중학교에 편입한다. 원주는 일찍이 가톨릭이 번성한 곳이라 김지하도 선배의 손에 이끌려 가톨릭 교구에 드나들지만 정식으로 세례를 받지는 않는다.

1956(16)에는 서울로 올라가 중동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문예반에 가입하고 김소월, 김영랑, 서정주 등의 시는 물론이고 오든, 스펜더, 맥리스, 루이스 등의 시를 원문으로 읽기도 하였다. 그에게 고등학교 시절은 외래문화의 흡수 시기이자, 관심을 모더니즘과 형이상학 쪽으로 넓힌 시기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이승만의 독재로 사회 혼란이 극에 달하던 1959(19)에는 서울대학교 미대에 입학하는데, 이듬해 3월 부정 선거가 치러진 후 곧바로 4 · 19가 터진다. 김지하 역시 서울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4월 혁명에 뛰어들어 학생 운동의 중심에 선다. 그러나 1961(21) 5 · 16 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에 의해 주동 학생들은 체포되거나 지명 수배되었고, 김지하도 추적을 피해 항만 인부나 광부 등으로 일하며 도피 생활을 하였다. 이때의 삶은 훗날 그의 첫 시집 <황토><산정리 일기>, <별빛마저 보이지 않네>로 형상화 되어 실린다.

1963(23)에는 김지하라는 필명으로 <목포 문학><저녁 이야기>가 발표되는데, 그의 작품 중 처음으로 활자화된 시이다. 그리고 서울대학교에 복학하여 교내 기관지인 <신세대>에 전투적인 시들을 발표하더니, 1964(24)부터는 다시 한일 회담 반대 시위 학생 운동의 중심에 선다. 당시 대통령 자리에 오른 박정희가 일본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며 굴욕적인 협상을 벌이는 것을 반대하는 시위였다. 이 시위가 절정에 이르자 박정희 정권은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고, 김지하는 체포되어 4개월쯤 옥고를 치른다. 결국 박정희는 비상 계엄령을 거듭하며 한일 조약을 독단적으로 조인한다.

1966(26) 7년 반 만에 학교를 졸업한 김지하는 수배자 신세가 되는 바람에 다시 강원도 탄광으로 도피하는데, 이때 폐결핵이 악화되어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김지하는 1969(29)이 되어서야 김현의 소개로 <황톳길>, <>, <가벼움>, <녹두빛>, <들녘>을 발표하여 비로소 정식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https://m.khan.co.kr/people/people-general/article/200810101749545)

1970년대

1970(30)에는 영화사에 시나리오 작가로 들어갔다가 한 달 만에 그만두고, <사상계>에 권력 상층부의 부패상을 판소리 가락으로 담아내어 자신이 고안해 낸 담시로 표현한 <오적>을 발표하였다. 이 시로 김지하는 군사 독재 시대의 가장 뜨거운 상징으로 떠오른다. 당시 <오적>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한국의 저항 시인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김지하는 <오적> 필화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나라 안팎의 구멍 운동, 호소문 등에 힘입어 석방된다. 같은 해 첫 시집 <황토>를 간행하였다.

1971(31)에는 정식으로 가톨릭에 입교하고 담시 <앵적가><불귀>를 발표하였다. 이듬해에는 서강대에서 희곡 <금관의 예수>, <도시의 이야기> 등을 무대에 올리는 한편 담시 <비어>를 발표한다. <비어>에잇 개 같은 세상!”이라고 한 마디 내뱉은 사람이 유언비어 유포죄에 걸려 사형에 처해지는 등의 현실을 풍자한 작품이다. 이것이 또 문제가 되어 <비어>가 발표된 가톨릭지 <창조>는 판매 금지를 당하고 발생인과 주간이 연행된다. 이즈음 김지하는 폐결핵 때문에 입원하여 요양하다가 투옥되는데, 나라 안팎에서 석방 여론이 퍼져 곧 풀려났다.

1973(33) 박경리의 외동딸 김영주와 결혼한 후에도 그는 장편 풍자시 <분씨 물어>와 희곡 <진오귀>를 발표하고, 민주 회복을 요구하는 시국 선언문에 서명하는 등 저항과 투쟁을 계속한다. 그러나 1974(34) ‘대통령 긴급 조치가 공포되자 다시 은둔 도피에 들어가야 했고, 몇 달 후 붙잡혀 사형을 선고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된다. 그러나 또다시 김지하를 구원하는 국제위원회가 결성되고 사르트르, 노암 촘스키 등의 석방 호소문이 발표되고, 국내외의 저명한 작가, 평론가, 종교인, 문인, 학자, 학생, 사회단체 등의 구명 운동이 줄줄이 이어져 이듬해 출옥하였다. 출옥 후 그는 옥중기인 <고행1974>를 발표한다.

1980년대 이후

이후로도 몇 차례나 투옥과 석방을 연거푸 겪던 중, 전두환이 정권을 잡은 1980(40) 겨울에 다시 석방된다. 이후 국내외의 각종 인권상과 시인상을 수상하였으며, 이전의 현실 비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불교의 선(), 토속의 샤머니즘, 동학 사상, 기독교 사상을 하나로 버무린 생명 사상을 주창한다.

1982(42)에는 두 번째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대설 · > 등을 간행하고, 1984(44)에는 이야기 모음집 <>을 냈다. <>에서 김지하는 자신의 한울님 사상, 생명 사상, 후천개벽 사상, 광대 예술론, 민중관 등은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1986(46)에는 시집 <애린><검은 방 하얀 방>을 한꺼번에 내고,1980년대 말까지 <이 가문 날에 비구름>, <별밭을 우러르며> 등을 펴냈다.

1990년대에는 한살림이라는 모임을 창립하여 생명 사상의 민중적 실천을 모색하였으며, <일산 시첩> 등을 발표하였다. 현재까지 그는 각종 학회, 연합회 등에 참여하고 시집과 시선집, 산문집 등을 내며 새로운 차원의 민족 문화 운동을 펼치고 있다.

김지하의 문학

율려 운동

김지하는 1998(58) ‘율려 학회를 만들고 율려 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율려(律呂)’라는 말은 중국 삼황제 때 12개의 대나무로 만들었다는 조율기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김지하는 율려가 우주의 중심음이며, 인간의 중심음이고, 질서(코스모스)와 혼돈(카오스)가 공존하는 우주의 근본 원리라고 설명한다. 오늘날의 혼돈, 복잡성, 탈중심은 이제까지의 중심음율려가 깨졌기 때문이며, 지구의 생태 환경 파괴나 오염, 기상 이변, 생물의 멸종, 도덕의 황폐와 같은 위기 역시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 정치, 경제, 지구 생태계에 닥친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여기에 맞는 새로운 율려, 새로운 중심 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담시

담시(譚詩)란 김지하가 고안해낸 형식으로, 직역하면 이야기시라는 뜻이다. 서구적 장르 개념인 발라드(Ballade)’의 번역으로 담시가 쓰이곤 하지만, 이 개념과 담시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가장 뚜렷한 차이는 담시에는 한국의 전통적 소리개념이 내포된다는 점이다. 또한 이야기의 대상이 명료하고 그 이야깃거리를 시인의 상상력 속에서 풍성하게 변형시키면서 마침내는 소리를 통하여 형상화된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으며, 아울러 춤과 노래의 극적인 요소와 서정시적 요소, 서사시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김지하의 시

<황톳길>

1969(29) 발표한 데뷔작이다. 어린 시절 겪은 한국 전쟁의 체험과 군사독재시절 민중들이 격고 있던 삶의 고난과 분노를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는 작품으로, 서정시이면서도 등단 초기 발표했던 대부분의 시들처럼 반민주 세력과 맞서 투쟁했던 김지하 시인의 저항시의 성격을 강하게 내포한 시이기도 하다.

붉은 흙의 황톳길은 척박한 식민지의 땅과 그 땅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온 참혹한 민중의 삶을 상징한다. 현대사의 소용돌이에서 민중의 삶은 모든 면에서 피폐할 대로 피폐해졌다. 역사의 주체로서 민중은 현실의 모순을 타파하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그치지 않았지만, 이를 원천 봉쇄하려는 권력의 탄압 또한 집요하고도 혹독하게 계속되었다.

황토길에 선연한 핏자욱은 민중들의 지난한 투쟁의 자취를,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죽은 애비는 권력의 총칼에 희생된 죄 없는 백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투쟁과 희생 속에서도 민중이 처한 현실은 조금도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어둠의 시대이며, 아들인 화자 역시 두 손엔 철삿줄이 묶인 채 애비가 간 길을 따라가고 있다.

그러나 낡은 짝배들 햇볕에 바스라진파괴된 생존의 터전을 지나면 다시 모밀밭이 있어 삶의 토대는 강인하고도 끈질기게 유지되고 있음을 보게 한다. 청천 하늘에 퍼지던 그 날의 만세 소리는 지금 철삿줄 파고드는 화자의 살결과 숨결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남은 일은 끝까지 이 투쟁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죽은 애비가 간 고난의 길을 따라 화자도 나는 간다 애비야하고 흐느끼며 간다. 그 길은 무수한 민중들이 자신을 희생하며 떠나간 길이지만 현실의 부정성과 질곡을 그대로 드러내어 내일의 광명을 처절하게 꿈꾸는 길이기도 하다.

<황톳길>
황톳길에 선연한/ 핏자욱 핏자욱 따라/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었고/ 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곳/ 두 손엔 철삿줄/ 뜨거운 해가/ 땀과 눈물과 모밀밭을 태우는/ 총부리 칼날 아래 더위 속으로/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밤마다 오포산에 불이 오를 때/ 울타리 탱자도 서슬 푸른 속니파리/ 뻗시디 뻗신 성장처럼 억세인/ 황토에 대낮 빛나던 그날/ 그날의 만세라도 부르랴/ 노래라도 부르랴/ 대샅에 대가 성긴 동그만 화당골/ 우물마다 십 년마다 피가 솟아도/ 아아 척박한 식민지에 태어나/ 총칼 아래 쓰러져간 나의 애비야/ 어이 죽순에 괴는 물방울/ 수정처럼 맑은 오월을 모르리 모르리마는/ 작은 꼬막마저 아사하는/ 길고 잔인한 여름/ 하늘도 없는 폭정의 뜨거운 여름이었다/ 끝끝내/ 조국의 모든 세월은 황톳길은/ 우리들의 희망은/ 낡은 짝배들 햇볕에 바스라진/ 뻘길을 지나면 다시 모밀밭/ 희디흰 고랑 너머/ 청천 드높은 하늘에 갈리든/ 아아 그날의 만세는 십 년을 지나/ 철삿줄 파고드는 살결에 숨결 속에/ 너의 목소리를 느끼며 흐느끼며/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오적>

1970(30) <사상계>에 발표한 담시이다. 당시 한국 사회의 지배계층을 을사늑약 때 나라를 팔아먹은 오적(五賊)에 비유하여 부정부패로 썩어 문드러진 권력층의 실상을 고발, 풍자하고 있는 작품이다.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 하는 짐승스런몰골의 다섯 도둑들이 서울장안 한복판 도둑소굴 때에서 벌이는 부정부패의 술수경연과 호화 사치, 방탕한 생활은 시인의 통렬한 풍자를 통해 그 흉폭하고 타락한 실상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또한 부정부패를 척결한답시고 나선 포도대장(경찰 또는 사법부의 은유)은 무고한 민초(民草) ‘꾀수만 닦달할 뿐 정작 오적의 주구(走狗)임이 적나라하게 폭로된다. 그러나 시인은 어느 맑게 갠 날 오적의 무리들이 벼락을 맞아 급살하고, 육공(六孔)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부패권력의 비극적 종언을 무섭고도 통렬하게 예언하고 있다.

<오적> 中
1/ ()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것다./ 옛날도 먼옛날 상달 초사훗날 백두산아래 나라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멍으로 듣던 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아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고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시절에도 시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현군양상(賢君良相)인들 세상 버릇 도벽(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쬭/ 남북간에 오종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 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만하고 목질기기가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의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안에는 큰 황소불알 만한 도둑보가 겉붙어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것다./ (후략)

<서울 길>

1970(30) 시집 <황토>에 실린 시로, 1960년대 이후 우리 사회가 겪은 이농 현상과 그로 인한 농촌 문화의 붕괴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서글픔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표현의 초점은 간다/ 울지 마라 간다는 구절의 세 번에 걸친 반복에 놓여 있다. 이 구절은 작품의 서두, 중간, 결말 부분에 놓여 시상을 개폐시킴은 물론 시상을 응축시키는 기능도 한다. 몸을 팔기 위해 서울로 가야만 한다는 표현은 그 결연한 의지만큼이나 서글프고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냄으로써 비장한 느낌을 전해 준다. <서울 길>의 묘미는 이러한 단호함과 비장함이 한데 맞물려서 서로 밀고 당기는 것에서 시적 긴장이 생겨나는 것이며, 그 긴장의 구도가 세 번씩이나 반복되며 주제를 강조시키고 있다.

한편, 화자는 서울에서 일용 노동자로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몸 팔러 가는 상황으로 표현함으로써 더욱 비감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러면서 수출 주도형의 경제 구조 지탱을 위한 저임금과 농민들에 대한 정부의 저곡가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언제 돌아온다는 약속도 할 수 없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결혼을 맹세할 수도 없이 막막한 심정으로 고향을 떠나 모질고 모진서울로 향해 가는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결코 고향의 분꽃밀냄새는 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고백 속에는 화자의 회한과 분노가 짙게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 길>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 길/ 몸 팔러 간다//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꽃피어 돌아오리란/ 댕기 풀 안쓰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 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 길/ 몸 팔러 간다

<비어>

1972(32) 가톨릭계 월간지 <창조>에 발표한 담시이다.

김지하의 시는 원초적 삶을 영위하는데 저해되는 현실을 강렬한 언어로 비판한다.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체념에 떨어지지 않고 깨어 있으려는 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노력을 보여 주며, 올바른 삶의 회복을 희구하기 위해 비극적인 삶의 체험을 처절하고도 절제된 언어로 표출한다. 구비 문학의 풍자 정신을 바탕으로 한국사회의 부패와 거짓을 신랄하게 질타한 <오적>과 더불어 <비어> 역시 장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김지하는 이 작품 때문에 적잖은 고초를 겪었다.

<비어> 中
서울 장안에 얼마 전부터/ 이상 야릇한 소리하나가 자꾸만 들려와/ 그 소리만 들으면 사시같이 떨어대며/ 식은땀을 주울줄 흘려샀는 사람들이 있으니/ 해괴한 일다./ 이는 대개 돈푼이나 있고 똥깨나 귀는 사람들이니 더욱 해괴한 일이다./ / 바로 저 소리다 쿵/ 저 소리가 무슨 소리냐 최루탄 터지는 소리냐 아니다 쿵/ 난리 터지는 소리냐 핵 터지는 소리냐 히로히도 방귓소리냐 아니다/ 닉슨 기침소리냐 아니다 북경(北京)도 천안문(天安門) / 코쟁이 맞아들이는 중공군(中共軍) 예포(禮砲)소리냐 아니다 그럼뭐냐/ 쿵 저봐라 쿵 또 들린다 쿵/ 저 쿵소리 내력을 누가 알꺼나 쿠궁쿵/ 어화 사람들아 저 소리 내력을 들어봐라/ 아라사도 미국 중국 일본국도 아닌 대한민국 서울 동편에/ 먼지펄펄 시끌덤벙 청량리 훨씬 지나가면 새까아만/ 연탄보다도 더 새까아만 쫄쫄 개굴창/ 물썩는 내 진동하는 중량천 기인긴 방축 위에 줄을 지어 다닥다닥/ 금슬좋게 들러붙어 비그닥/ 삐끄 삐끄 삐끄다다닥/ 바람결에 전후 좌우로 몸을 흔들어대면서/ 노래 노래 불러쌌는 판잣집 한 모퉁이 그 한귀퉁이 방에 청운의 뜻을 품고/ 서울서 올라와 세들어사는 안도(安道)라는 놈이 있었것다./(후략)

<타는 목마름으로>

1975(35) 발표하고 1982(42) 낸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에 표제시로 수록한 작품이다. 유신 체제의 질식할 듯한 억압 속에서 민주주의 회복의 열망을 절규한 1970년대 초의 기념비적 작품의 하나이다. 가슴 속에 목마른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이른 새벽 뒷골목에서 남 몰래 써야 한다는 시적 상황 속에 당시의 현실이 선명하게 집약되어 있다.

2연은 여러 가지 소리의 중첩을 통해 이 시대의 공포와 고통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발자국 소리에서부터 탄식 소리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구체적 사건의 서술이 없지만, 오히려 소리들 사이에 있는 무서운 사태가 독자들의 상상 속에서 생생하게 떠오르도록 한다. 화자는 위와 같은 험한 상황에서의 분노와 비통함으로 흐느끼면서 뒷골목의 나무판자에 민주주의여 만세라고 쓴다. ‘뒷골목에서 숨죽여 흐느끼며/ 남 몰래/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 만세를 쓸 수밖에 없는 이 대목은 그 어떤 산문적 서술보다 뚜렷하게 당시의 정치적 현실을 증언하면서,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비장한 결의를 보여 준다.

<타는 목마름으로>가 발표된 1970년대 중반은 이른바 ‘10월 유신이라고 불리는 군사 독재 정권의 강압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김지하는 그와 같은 군사 독재 정권의 강압적인 통치에 맞서 민주주의의 회복을 부르짖어 왔고, 그로 인해 거듭되는 체포와 구금에 시달렸다. 이와 같은 독재 정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은밀하게 읽혀졌고, 급기야는 노래로까지 만들어져 수많은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심어 주었다.

특히 <타는 목마름으로>는 절실하면서도 자칫하면 추상적인 구호의 수준에 그치기 쉬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생경하고 공허한 구호의 수준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김지하 자신의 개인적 서정으로 육화(肉化)시켜서 표현함으로써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가 1970년대 저항시의 정점에 서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김지하의 양심선언문
내가 요구하고 내가 쟁취하려고 싸우는 것은 철저한 민주주의, 철저한 말의 자유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또한,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자, 자유주의자이다. 내가 카톨릭 신자이며, 억압받는 한국 민중의 하나이며, 특권, 부패, 독재 권력을 철저히 증오하는 한 젊은이라는 사실 이외에 나 자신을 굳이 무슨 주의자로 규정하려고 한다면, 나는 이 대답밖에 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백성을 사랑하는 위정자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피와 시민의 칼을 두려워하는 권력을 바란다.”
<타는 목마름으로>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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