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대문학테마 URL 복사

현대문학 테마 90. 김종삼, 전봉건, 천상병

2022. 1. 13. by 솜글

김종삼, 전봉건, 천상병은 현실 세계와 거리가 먼 순수 지향적인 의식을 꾸밈없는 정서로 드러내는 천진성을 특징으로 한다.


김종삼

김종삼의 생애

김종삼(金宗三, 1921~1984)은 황해도 은율에서 신문 기자를 낸 지식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다. 어린 시절을 평양에서 보내다가 숭실중학교를 중퇴한 후 1938(18) 일본 토요시마 상업학교에 편입했으며, 본래는 고전 음악을 좋아하여 작곡을 하고 싶어 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문학 공부를 한 후 1944(24) 도쿄 출판배급주식회사에서 일했다. 일본에서 김종삼은 도스토예프스키, 바이런, 하이네, 발레리 등의 작품을 읽으며 지내다가 해방을 맞은 25세에 귀국하였다.

김종삼은 전시인 1951(31) <돌각담>을 내놓으며 시단에 들어온 후 1953(33)부터 초기 대표작인 <원정>을 발표하여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여 1957(37)에는 김광림, 전봉건과 3인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를 냈다. 1963(43)에는 동아 방송에 입사하고 1976(56) 정년퇴임할 때까지 음악 효과를 맡아 원 없이 고전 음악을 들으며 지냈다.

1968(48) 김광림, 문덕수와 3인 시집 <본적지>를 낸 이듬해에는 첫 단독 시집인 <십이음계>를 내고, 이후 <시인 학교>(1977), <북 치는 소년>(1979),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1982), <평화롭게>(1984) 등을 간행하였다. 죽기 한 달 전인 1984(64) 11월에는 <전정><문학 사상>에 발표하였다.

그러나 김종삼은 인생에 생활이랄 게 없고 그저 음악과 술로 지내는 철저한 보헤미안이자 무산자였다. 술값이 없어 가난한 무허가촌의 구멍가게에서 소주를 훔치거나 길에서 만난 지인들에게 소주 값을 갈취할 정도였다. 항상 똑같은 점퍼에 벙거지 차림으로 불쑥불쑥 나타나곤 해 별명이 도깨비였다고 한다. 결국 김종삼은 알코올 중독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어 쓸쓸하게 1984(64) 생을 마감하였다.

사진 출처 : 매일경제(https://m.mk.co.kr/news/culture/view/2021/11/1103622/)

김종삼의 시

김종삼은 고도의 비약에 의한 어구의 연결과 시어가 울리는 음향의 효과를 살린 초현실주의 기법을 원용하여 동안(童眼)에 비친 이미지, 즉 순수 지향의 의식을 펼쳐 보인 시인이다. 초기에는 시행의 단절, 난삽한 한자어의 배치, 의미의 비약 등을 활용하여 기법의 실험성을 드러내다가, 후기에는 점차 평이한 진술을 바탕으로 인간의 체험을 드러내고 행간의 여운을 통하여 감추어진 의미를 암시하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초기 시에서는 주로 물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대상이 없는 아름다움의 세계, 음악의 세계가 노래된다.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북 치는 소년>에서 강조되는 것이 그러하다. 중기에 오면 의 이미지가 중심을 이루면서 고통과 죽음의 세계를 노래하며, 후기 시에서는 지상의 삶에 대한 연민 어린 애정이 어려 있다.

<원정>

1953(33) <신세계>에 발표하고 1969(49) 첫 단독 시집 <십이음계>에 수록한 작품으로, 김종삼의 본격적인 데뷔작이라 할 수 있다. 원래 한국 전쟁 직후 <문예>에 보냈으나 지나치게 난해하다는 이유로 추천 받지 못했었다고 한다. 김현은 <원정>의 형식적 특성으로 묘사의 과거체 사용를 들고, 그 시적 효과인 설화성을 김종삼 시의 두드러진 특성으로 지적하면서 세계와 시적 자가 사이에 비화해적 관계가 내재되어 있으며 시인이 세계를 비극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평했는데, 이후 이 분석은 다른 평가들에 의해 거의 공식화되었다.

문학의 전통적 상징 문법에 비추어 보면 과수밭(과수원)’은 절대 순수와 조화의 세계, 낙원을 표상한다. 그런데 화자는 그 낙원으로부터 거부당한다. 거기부터 이미 시인의 비극적 세계 인식과 통찰이 표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원정>
평과()나무 소독이 있어/ 모기새끼가 드물다는 몇 날 후인/ 어느 날이 되었다.//
며칠 만에 한 번만이라도 어진/ 말솜씨였던 그인데/ 오늘은 몇 번째나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된다는 길을 기어이 가리켜주고야 마는 것이다.//
아직 이쪽에는 열리지 않은 과수밭/ 사이인/ 수무나무 가시 울타리/ 길줄기를 벗어나/ 그이가 말한 대로 얼만가를 더 갔다.//
구름 덩어리 얕은 언저리/ 식물이 풍기어오는/ 유리 온실이 있는/ 언덕 쪽을 향하여 갔다.//
안쪽과 주위(周圍)라면 아무런/ 기척이 없고 무변(無邊)하였다./ 안쪽 흙바닥에는/ 떡갈나무 잎사귀들의 언저리와 뿌롱드 빛깔의 과실들이/ 평탄하게 가득 차 있었다.//
몇 개째를 집어보아도 놓였던 자리가/ 썩어 있지 않으면 벌레가 먹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 것도 집기만 하면 썩어갔다.//
거기를 지킨다는 사람이 들어와/ 내가 하려던 말을 빼앗듯이 말했다.//
당신 아닌 사람이 집으면 그럴 리가 없다고

<북 치는 소년>

1969(49) 낸 시집 <십이음계>에 실린 작품이다.

김종삼의 초기 시는 시행의 단절, 난삽한 한자어의 배치, 의미의 비약 등을 활용하여 기법의 실험성을 강하게 드러내는데, 초기 대표작 중 하나인 <북 치는 소년> 역시 그러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 난해하다. ‘-처럼으로 묶인 세 개의 연에서 그 비교 대상이 생략됨으로써 완전한 문장을 갖추지 못한, 그야말로 쓰다가 그만 둔 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단편적으로 끊어진 그 시상들을 북치는 소년이라는 제목을 중심으로 엮어 보면, 시인이 의도하고 있는 통일된 시상을 찾아낼 수 있다. 다시 말해, 각 연의 ‘-처럼뒤에 북치는 소년을 덧붙이면, 전체의 맥락이 완전하게 살아나 독자의 가슴 속에서 여운으로 완결됨을 알 수 있다.

김종삼 시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대체로 혼자이고 가난하며 비극적 존재로 나타나는데, <북 치는 소년>에서도 역시 비애를 간직한 가난한 아이가 등장한다. 당시가 전후 상황이었음을 감안한다면 흔히 볼 수 있었던 전쟁고아로도 볼 수 있다.

성탄절이 가까운 어느 날, 그 아이는 서양 소년이 북을 치고 있는 그림의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카드를 받는다. 그러나 카드 속에 담겨 있는 북치는 소년’, ‘양떼’, ‘진눈깨비등의 이국적 풍광(風光)들은 그에게 막연한 아름다움의 무의미한 존재일 뿐이다. 아이는 그 환상적인 풍경에 도취되기도 하지만, 그는 곧 그것이 다만 화려한 장식에 불과한, ‘내용 없는 아름다움임을 깨닫는다.

이렇듯 이 시는 눈에 비친 사상(事象)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시가 아니라, 그 사상 뒤에 배음(背音)으로 깔려 있는 이미지에 의해서 조형된 시이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는 어떤 사상이나 의미 내용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다만 각 시어들이 구축해 놓은 아름다움 그 자체만을 느낄 수 있으면 충분할 것이다.

<북 치는 소년>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민간인>

1971(51) <현대 시학>에 발표한 작품이다. 6 · 25의 비극적 체험을 바탕으로 창작되었으면서도 전쟁의 색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민간인이란 관리나 군인이 아닌 보통 사람이란 뜻으로, 남북 분단의 비극이 평범한 일반인에게도 끼치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채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종삼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배경을 제시하고, 그 곳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이렇다 할 생각과 느낌을 덧붙이지 않은 채 다만 보여만 줄 뿐이다. 그것은 시인이 그 비극적 상황을 비정하리만큼 객관적으로 그려 내면서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느낄 것인가를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김종삼에게 기억하기조차 끔찍했던 공포의 사건으로, ‘용당포라는 지명과 ‘1947년 봄이라는 시간을 통해 더욱 구체화됨으로써 장장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무서운 사건은 다름 아닌, 전쟁이 발발하기 전, 북한 주민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남북 왕래가 금지된 3 · 8선을 넘어 월남을 감행하는 극한 상황에서, 우는 젖먹이 아이까지 바다 속에 던져 넣던 비극적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라는 구절의 수심은 바로 분단이 가져다 준 비극의 깊이요, 그의 가슴에 각인된 고통과 슬픔의 깊이라 하겠다.

<민간인>
1947년 봄/ 심야(深夜)/ 황해도 해주(海州)의 바다/ 이남(以南)과 이북(以北)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嬰兒)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

<어부>

1975(55) <시문학>에 발표한 작품으로, 김종삼의 시 중 드물게 긍정적인 이미지,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시이다.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는 나약한 인간 존재를 어부로 비유하고,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공간 전체를 바다, 세상에 대처하는 인간의 생존 방식을 고깃배로 설정하여, 인간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 속에서 얻어지는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실존적 질문을 평이한 어조로 형상화하고 있다. 삶의 고뇌를 이야기하면서도 희망의 미래를 잃지 않고, 과거의 고통을 수용하여 그것을 다시 고난 극복의 동력으로 삼는 자세가 인상적이다.

<어부>
바닷가에 매어 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1982(62)에 간행한 시집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의 표제시로, 시와 시인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나 예술은 종종 현실과 동떨어져 관념과 추상의 세계만을 추구하기도 하는데,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서민들의 건강한 생활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뒤 이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정한 의미의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2행에서 화자 자신은 시인이 아니라서 시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것은 반어적인 표현이다. 이 말 속에는 인간과 인간이 만나서 빚어내는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시를 써 보고 싶다는 강한 의지와 소망이 담겨 있다.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진술 속에 인정이 사람다움의 기초라는 인식을 담아냄으로써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는 자신의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한편, 현실 세계의 비정함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또한, 그것이 시인이 행하여야 할 중요한 사회적 책무임을 우회적인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착하고 순정한 사람들이 시인이라고 대답한 것은 분명 동문서답이다. 그러나 시인의 대답으로부터 우리는 충분히 답을 유추할 수가 있다. 착하고 순정하게 생활을 영위하는 일상인들이 시인이라면, 그들의 삶 자체가 시가 아니겠는가. 일상인들과는 다른 선택받은 존재로서의 시인이라는 관념, 고급한 언어 예술의 정화가 시라는 관념 등과 결별하고, 시라는 예술을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내림으로써 무엇이 진정 훌륭한 시이며 바람직한 시인의 모습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우회적으로 답변하고 있는 작품이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으면서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은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전봉건

전봉건의 생애

전봉건(全鳳健, 1928~1988)은 평남 안주에서 태어나 1945(18) 숭인중학교를 졸업하고, 해방 후인 1946(19) 가족들과 월남하였다. 시골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중 형 전봉래의 영향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전봉건은 1950(23) 서정주와 김영랑의 추천으로 <문예><>, <사월>, <축도> 등을 발표하며 시단에 나온다. 그러나 곧 6 · 25가 터졌고, 피난을 떠나지 못해 지하에서 숨어 지내던 중 수복 뒤에 징집되었다. 겨우 전선에서 빠져 나왔지만 1951(24)에는 형 전봉래가 피난지 부산에서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즈음을 비롯해 이후로도 한동안 전봉건의 시에서는 초연과 슬픔, 인간 존엄성과 상실의 기운이 보이게 된다.

1955(28)에는 <강물이 흐르는 너의 곁에서>, <은하를 주제로 한 바리아시옹>, <강하> 등을 내는데, 여기에서는 전쟁 체험에 자연을 덧칠해 훼손된 인간 세계를 드러내는 한편 질서, 조화, 생명을 노래하고, 후렴을 사용하여 시의 음악성을 추구한다. 1957(30) 김종삼, 김광림과 함께 1950년대의 절망과 희망을 모더니즘 기법으로 담아낸 3인 연대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을 내고, 1959(32)에는 장시 형태를 띠면서도 장시가 흔히 취하는 서사 구조에서 벗어나 이미지와 감각으로 당대의 현실을 그려낸 독특한 분위기의 첫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를 펴냈다. 이 시집으로 전봉건은 제3회 한국시인협회상을 받았다.

이후로도 시작 활동을 꾸준히 하고 각종 문학지의 실무를 맡다가 1969(42)에는 <현대 시학>을 창간하여 20여 년간 주간으로 있었으며, 시집 <속의 바다>(1970), 시선집 <꿈 속의 뼈>(1979), 시집 <피리>(1980)을 낸다. 1982(55)에는 실향과 분단의 상흔을 담은 연작시 형태의 시집 <북의 고향>을 내고, <새들에게>, <> 등을 더 낸 후 1988(61) 당뇨로 삶을 마감하였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1212024001)

전봉건의 시

<강에서>

1982(55) 시집 <북의 고향>에 수록한 작품이다.

전봉건 문학의 특징 중의 하나는 민족 분단에 대한 강력한 시사성을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자신이 휴전선의 직접적 피해자요 희생자의 한 사람이기도 한 전봉건은 이산가족의 고통을 노래함으로써 이 시대를 사는 겨레의 비원을 대변하는가 하면, 6 · 25동란의 비극적 현장을 생생한 목소리로 포착하기도 한다. 이 시에서는 북녘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의 처절한 심경이 서정성을 잃지 않고 표출되고 있다. 그것은 30년 통곡을 삼킨 자의 인고와 극기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러기 때문에 내면적 울림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강에서>
바람 불면/ 임진강으로 가서/ 못 건너는 강건너/ 북쪽땅 산자락/ 내 집을 보았습니다./ 발돋움하고 보았습니다./ 그러기를 30/ 이제는 나이 들어 흐린 눈/ 바람 불면 임진강으로 가서/ 못 건너는 강 건너 북쪽땅 산자락/ 내 집으로 부는 바람의/ 허연 뒷덜미나 보고 앉았습니다./ 시퍼렇게 살갗 튼 발뒤꿈치나 보고 앉았습니다.

<피아노>

1985(58) <전봉건 시선>에 수록된 작품으로, 실험적 기법과 참신한 심상을 중시하는 전봉건의 대표작이다. 과감한 비유와 공감각적 심상을 사용하여 생기 있는 피아노 소리에 대한 감동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피아노의 생기 찬 소리를 시각화하여 마치 싱싱한 물고기가 연이어 튀는 것으로 묘사하는 등 강렬한 감각(빛깔)들의 조형으로 이루어진 추상화 같은 시라 할 수 있다.

시 중에는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작품도 있지만, 오직 말의 아름다움, 말의 재미를 캐기에만 열중하는 시도 있다. 지능 검사를 연상시키는 말장난, 형식미의 재간 놀음, 이미지의 공중 잡이 같은 것은 곧 현대 시의 한 경향을 이루었다.

<피아노>에도 그런 경향이 짙다. 특히 이 작품은 감각적인 시어의 구사를 통하여 하나의 이미지로부터 다른 이미지로 비약하는 연상 작용, ‘(피아노의) 선율물고기바다파도칼날의 순서로 전개되는 이미지가 돋보인다.

<피아노>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천상병

천상병의 생애

천상병(千祥炳, 1930~1993)은 일본 효고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까지 그곳에서 살다가 1945(16) 해방 후 귀국한다. 천상병은 마산중학교 3학년에 편입하여 조숙한 천재성을 발휘하는데, 당시 교사이던 김춘수의 눈에 띄어 그의 추천으로 1949(20) <강물> 등을 <문예>에 발표하였다.

1950(21) 6 · 25 초기에 미군 통역관으로 근무한 천상병은 이듬해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한다. 이 무렵 그는 송영택 등과 동인지 <처녀지>를 발간하고 <문예><나는 거부하고 저항할 것이다>라는 평론을 발표하였다. 1952(23)에는 <문예>에 시 <갈매기>가 완료 추천되어 정식으로 문단에 나왔다. 1954(25)에는 대학을 중퇴하고 문학에 전념하기 시작하였는데, 35세 때 잠깐 부산 시장 공보 비서로 일했던 것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 생활이었다.

천상병은 1967(38)에는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 정도 옥고를 치렀는데, 이때 얻은 고문 후유증, 그리고 심한 음주벽과 영양실조 때문에 1971(42) 갑자기 길에서 쓰러진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행려병자로 오인되어 서울시립정신병원에 보내지고, 문우들과 지인들은 그가 어디서 죽은 줄 알고 그의 첫 시집인 유고시집 <>를 간행하였다. 여기에는 그의 대표작인 <>, <귀천>, <소릉조>, <나의 가난은> 등이 고루 실려 있다.

곧 돌아온 천상병은 1972(43) 친구의 여동생인 문순옥과 결혼하고, 1979(50)<>에 실렸던 작품들을 거의 다 옮긴 시집 <주막에서>를 발간하였다. 이어 1980년대에 들어서도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1984),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1987) 등을 내놓았다.

1988(59) 만성 간경화로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은 후에도 기적처럼 살아나 시집 <요놈! 요놈! 요 이쁜 놈!>(1991),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1993) 등을 더 펴낸 후 1993(64) 이 세상의 소풍을 끝내고 숨을 거두었다. 사후 같은 해에 유고 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가 나왔다.

사진 출처 : 나무위키(https://namu.wiki/w/%EC%B2%9C%EC%83%81%EB%B3%91)

천상병의 시

천상병의 시에서 우리는 순진무구와 무욕(無慾)을 읽을 수 있다. 그는 현란하거나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사물을 맑고 투명하게 인식하고 담백하게 제시한다. 죽음을 말하면서도 결코 허무나 슬픔에 빠지지 않고, 가난을 말하면서 구차스러워지지 않는다.

그의 시들은 어떻게 보면 우리 시사에서 매우 이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인이라는 세속적 명리(名利)를 떨쳐버리고 온몸으로 자신의 시를 지킨, 진정한 의미의 순수 시인이라 할 수 있다.

<>

1971(42) 실종되었을 때 문우들에 의해 발간된 유고시집 <>1979(50) 시집 <주막에서>에 수록된 작품이다. ‘는 천상병 시 세계의 중심 심상으로, 시적 자아의 대리자 또는 자유 지향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에서 는 삶과 죽음, 천상과 지상의 교차점을 향해 날아간다. 화자는 죽은 다음 날 새가 되어 돌아와 죽음과도 같은 고통 속에 있는 자신의 현존을 응시한다. 그러자 삶은 홀연히 찬란한 것으로 비친다. 한 순간에 삶의 절망이 찬란한 것으로 바뀐 것이다. 이렇게 <>에서 천상병은 한 마리 새가 되어 죽음 쪽에서 삶을 바라보고 삶과 죽음을 동시에 노래하며 현실을 초월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새>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 날이 와, 새가 울고 꽃이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무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情感)에 가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週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귀천>

1971(42) 시집 <>1979(50) 시집 <주막에서>에 수록된 작품이다.

<>와 마찬가지로 <귀천>에서도 화자는 고통스러운 현존의 삶을 죽음이라는 프리즘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삶의 모든 것을 이미 초연한 태도로 바라보는 천상병은 놀라운 관용과 초연함으로 삶을 끌어안는다. 그러자 불행하고 비참했던 삶이 아름다운 소풍이 된다. 이 시 어디에서도 삶의 고단함이나 죽음의 쓸쓸함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 것쯤은 맑고 담백한 어조로 가볍게 건너뛰는 것이다.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소릉조>

1971(42) 시집 <>1979(50) 시집 <주막에서>에 수록된 작품이다. ‘소릉은 두보의 호로, ‘소릉조란 말하자면 두보로부터 운을 빌린다는 뜻이다.

천상병의 시는 초기부터 말기까지 끊임없이 가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전 생애에 걸쳐 일정한 직업 없이 떠돌았던 그가 시대와 불화를 겪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가난과의 끈질긴 갈등과 화해 속에서 가난 길들이기에 이력이 날 것도 자명한 이치이다. 가난이란 어쩌면 그에게 자연스러운 일이고, 또한 운명적인 것이었을 수도 있다.

<소릉조> 핵심은 고절감, 그리고 가난으로 인한 소외감이다. 가족들과 떨어져 있음에서 오는 고독과 단절감이 표층적인 정서를 이루며 경제적인 궁핍에 기인하는 뼈저린 가난의 체감이 그 심층 의식에 해당한다. 특히, 4연의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라는 시구 속에는 뿌리 깊은 가난에 대한 절망과 좌절감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러나 이 시에는 이러한 가난의 문제가 한탄이나 진부한 타령으로 끝나지 않고 시적 품격을 유지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 가난에 지치고 병들어서 세상을 혐오하고 저주하는 게 아니라, 5, 6연에서 보여 주듯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와 같이 아이러니에 의한 연민의 정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반전으로 인해 생각느니, ,/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라는 구절처럼 가난이 삶의 한 본성이며, 그것을 통해 인간이 비로소 진실해질 수 있고, 깊이 있게 살 수 있다는 깨달음을 획득하게 된 데 이 시의 참뜻이 있다. 가난이야 말로 인간을 깊이 있고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근원적인 힘이며 시적 진실의 핵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소릉조─70년 추일(秋日)에>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나의 가난은>

1971(42) 시집 <>1979(50) 시집 <주막에서>에 수록된 작품이다.

가난은 오히려 자족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조촐한 행복의 조건들을 욕심 없이 투명한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원천이 된다. 이를 터득한 천상병은 가난에 익숙해져서 그것에 따로 불만을 갖거나 원한을 품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길들이고, 가난이 주는 조촐한 지복을 즐긴다. 그런 태도가 <나의 가난은>에 오면, 아예 가난은 내 직업이라고까지 말하는 경지에 이른다. 내면에 넉넉한 낙관주의를 만들어 정신적 덕성을 이룩한 천상병의 시 세계를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나의 가난은>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은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나고 생각은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 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 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잎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음 그런 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옷, 패션 트렌드, 운동화, 쇼핑, 신상품, 신발, 자켓, 코트, 탈모, 모발이식, 미용, 성형수술, 구두, 부츠, 샌들, 여름 신발, 바지, 롱팬츠, 팬츠, 양말, 모자, 캡, 나이키, 아디다스, ABC 마트, 롱부츠, 첼시부츠, 티셔츠, 원피스, 정장, 수트, 가방, 귀걸이, 목걸이, 반지, 마스크, 시계, 팔찌, 패션, 백화점, 의류, 옷, 머리띠, 롱패딩, 패딩, 점퍼, 야상, 재킷, 화장품, 크림, 스킨, 아이섀도우, 아이브로우, 올리브영, 롯데닷컴, 하프클럽, 니트, 블라우스, 스커트, 치마, 주름바지, 통바지, 크롭티, 와이셔츠, 영어, 토익, 학원, 반찬, 다이어트, 도시락, 닭가슴살, 샐러드, 감자, 계란, 집밥, 요리, 고기, 소고기, 닭다리, 치킨, 아침밥, 삼겹살, 곱창, 밀키트, 선물세트, 저녁 메뉴, 볶음밥, 탕수육, 광어회, 연어회, 해산물, 냉동식품, 참치회, 잡곡밥, 아이스크림, 배스킨라빈스, 배달의 민족, 배달음식, 떡볶이, 튀김, 오징어튀김, 순대, 오뎅, 토마토, 딸기, 사과, 귤, 오렌지, 콤부차, 홍차, 레몬티, 커피, 카누, 네스프레소, 캡슐커피, 식품 직구, 영양제, 비타민, 아이허브, 신용카드, 소액대출, 대출, 보험, 보험상담, 저축은행, 여성대출, 학자금대출, 대출계산기, 대출이자, 주부대출, 임플란트, 치아보험, 자동차 렌트, 제주도 렌트, 렌터카, 자동차, 승용차, 중고차, 자동차보험, 자동차사고, 청약주택, 청약통장, 정기예금, 적금, 주택정약, 아파트, 내집마련, 빌라, 30평대, 부동산, 소형아파트, 치아, 어금니, 송곳니, 법률상담, 모기지론, 대학 편입, 학사편입, 대학교, 웹호스팅, 클라우드, 보안솔루션, 홈페이지, 앱제작, 동영상제작, 영상편집, 기부, donate,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세계구호,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전문자격증, 자격증, 학원, 사이버대학교, 학사, 학위취득, 학점은행제, 토익, 영어, 외국어, 통역, 번역, 동시통역
[면책공고] 솜글 블로그 자료 이용 안내

이 글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