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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테마 포스트86

현대문학 테마 69. 정한숙 정한숙의 생애 일오(一梧) 정한숙(鄭漢淑, 1922~1998)은 평북 영변에서 태어나, 1945년(24세) 해방 직후 홀로 월남하여 고려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때부터 ‘주막’ 동인으로 활동하다가 1948년(27세) 에 단편 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1950년(29세) 6 · 25가 터진 후에는 미처 피난하지 못해 숨어 지내다가 이듬해 부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이 때 본 피난지 부산의 세태와 전쟁이 개인의 삶에 남긴 상처를 에 담아 1952년(31세) 발표하였다. 1953년(32세)에는 에 중편 이 입선하고, 이어 을 내놓았다. 1955년(34세)에는 에 그의 대표작인 단편 를 발표하여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이후 1950년대 내내 , , 등 많은 작품을 쏟아낸다. 1960년(39세)에는 단..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68. 정한모 정한모의 생애 전기 활동 정한모(鄭漢模, 1923~1991)는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일본 오사카의 나니와 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해방 직후인 1945년(23세)에는 서울대학교 시절 동인 ‘백맥’을 결성하지만 실패하고, 다시 ‘시탑’을 꾸리지만 이 역시 자금난으로 그만둔다. 이후 정한숙, 전광용 등과 다시 ‘주막’을 결성하여 동인으로 활동하였는데, ‘주막’ 역시 한국 전쟁 이후 사그라든다. 1950년(28세) 6 · 25 발발 이후 다시 상경해 1955년(33세) 서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신춘문예에 시 이 입선하여 정식으로 등단한다. 1959년(37세)에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고, 전광용이 휘문 고교를 떠날 때 그 자리에 들어갔다. 정한모가 본격적으로 시인으로서 활동한 것은 1958년(36세)의..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67. 전광용 전광용의 생애 학창 시절과 전기 문학 백사(白史) 전광용(全光鏞, 1919~1988)은 함남 북청에서 3 · 1 운동이 일어나던 1919년 3월 1일에 태어나 1937년(19세) 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함흥 금융 조합에 자리를 얻어 들어간다. 1939년(21세)에 신춘문예에 동화 가 입선하여 문학과 인연을 맺었다. 1943년(25세) 유학을 위해 일본으로 갔지만 곧 돌아오고, 1945년(27세) 경성경제전문학교에 입학해 수료한다. 이어 1947년(29세) 늦은 나이에 서울대학교 국문과에 들어갔다. 이 무렵부터 정한숙, 정한모 등과 함께 ‘주막’ 동인을 결성하여 습작한 글을 서로 나눠 읽고 토론하며 착실하게 문학 수업을 쌓았다. 1950년(32세) 6 · 25가 터져 피난살이를 하는 와중에도 학업을 놓지 않..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66. <후반기>와 모더니즘 : 김경린, 박인환, 김규동 의 발간과 신세대의 출현 6 · 25 전쟁 직전 을 펴낸 바 있던 박인환과 김경린은 1951년, 피난지였던 부산에서 이봉래, 조향, 김규동 등을 끌어들여 시 전문 ‘후반기’ 동인을 결성한다. 이들은 1950년대를 “20세기 후반기의 시작”이라는 의미로 해석하였으며, 시적 상상력의 근거지로 주목한 곳은 ‘도시’였다. ‘후반기’ 동인 시인들은 유치환, 서정주 등의 ‘인생파’와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의 ‘청록파’를 비판하고, 반 전통성, 도시성, 서구 모더니즘 기법을 추구한다. 기성 주류 문단에서 배척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김동리, 조연현 등의 채널이 아니라 당시 비주류였던 김광섭 등의 도움을 얻어 지면을 확보하였다. 의 시인들은 앞 세대에 반기를 들고 나타났다는 점, 현대 도시 문명을 새로운 언어와 시 ..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65. 오영수, 손창섭, 장용학 1950년대에는 , , , 등 새로운 문학 지면이 만들어지는데, 특히 는 문학보다는 사상의 조류에 접근 가능하게 하는 지식을 주로 전달하던 잡지로, 시대를 보는 객관적 시선과 비판적 태도로 젊은 지식인과 학생들에게 환영 받다가 점차 문학지로 성격이 바뀐다. 그러자 이들 문예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새로운 한글세대 소설가들이 등장하는데, 오영수, 손창섭, 장용학이 대표적이다. 오영수 오영수의 생애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오영수(吳永壽, 1911~1979)는 경남 울주의 바닷가 근처에서 빈농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1921년(11세)경까지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고 1928년(18세)에야 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어릴 때부터 글과 글씨를 잘 썼는데, 학교를 졸업한 후 면사무소에서 서기로 일하다가 공부를 더 하고..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64. 황순원 황순원의 생애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황순원(黃順元, 1915~2000)은 평남 대동의 명문가에서 태어난다. 1922년(8세)에 평양으로 이사하여 1924년(10세) 평양 숭덕 소학교에 들어가는데, 당시로서는 드물게 스케이트도 타고 축구와 바이올린까지 배웠다고 한다. 그는 1927년(13세) 때부터 체증을 다스리기 위해 어른들 허락 하에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평생 소주 애호가로 살았다. 1929년(15세)에는 정주 오산 중학에 입학하여 이승훈 선생을 만나고, 평양 숭실 중학으로 전학한 후부터 동요와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31년(17세) , 등을 발표하였다. 1934년(20세)에는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하는데, 이때 ‘학생예술좌’라는 극예술 연구 단체를 창립하여 활동하고, 그..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63. 김동리 김동리의 생애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김동리(金東里, 1913~1995)는 본명이 시종(始鍾)으로,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다. 김동리는 어머니가 노산한 데다 밭일이 바빴던 탓에 형수의 품에서 자랐는데, 조금 자란 후에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 김동리는 어릴 때부터 병을 자주 앓았고, 해마다 사람이 빠져 죽는다는 예기소 언저리에서 사는 동안 숱한 죽음을 보고 듣는다. 이를 통해 그는 죽음과 삶, 사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버릇을 가졌다. 김동리는 교회 부속 계남 소학교를 다니며 인근 야산과 들판을 쏘다녀 자연과 교감한다. 6학년 때에는 교지인 에 동화, 논문, 동시 등을 발표하여 ‘글 잘 쓰는 아이’로 주목 받았다. 1927년(15세) 소학교를 마치면서 대구에서 중학을 마..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62. 박두진 박두진의 생애 박두진(朴斗鎭, 1916~1998)은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 1939년(24세) 6월 에 , , 이 추천되고, 1940년(25세) , 가 추천되어 청록파 시인 중 가장 먼저 완료 추천을 받는데, 이때 정지용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이후로도 꾸준히 , , , 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시들을 발표한다. 해방 후 을 발간할 무렵인 1946년(31세)에는 서정주, 박목월과 함께 우익 문학 단체인 ‘청문협’에 가입한다. 그러나 그는 단체 활동이나 정치보다는 등산, 수석 채집, 서예에 더욱 몰두하는 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박두진 역시 해방의 기쁨을 노래하는데, 1949년(34세)에 펴낸 첫 단독 시집 에서는 여전히 산을 소재로 하면서도, 이전과는 달리 이글이글 타는 해를 솟아오르게 하..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61. 박목월 박목월의 생애 해방 이전 박목월(朴木月, 1916~1976)은 경북 월성에서 태어나 넉넉한 가정에서 자란다. 어릴 때는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하였으며,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30년(15세) 대구 계성 중학에 들어가 하숙 생활을 하며 습작기를 보냈다. 이미 3학년 때 동시 등을 투고하여 아동 문학으로 어느 정도 재능을 인정받았으나, 1935년(20세) 졸업한 후 집안이 기운 탓에 고향으로 들어와 동부 금융 조합에서 일했다. 그러던 중 1939년(24세) 에 작품을 투고하여 청록파 시인 중 가장 늦은 1940년(25세)에 등단하였다. 이때 그는 정지용으로부터 “북의 소월, 남의 목월”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목월’이라는 필명은 변영로의 아호인 ‘수주’의 ‘수(樹)’ 자에 포함된 ‘..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60. 조지훈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세 사람은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 사이 을 통해 문단에 나온다. 이들은 그 동안의 서정 시편들을 모아 1946년 여름에 공동 시집 을 낸다. 이 의 이름은 박목월의 시 에서 따온 것이다. 이들은 특별한 유파 의식을 바탕으로 공동 시집을 낸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들 시에는 소재의 뚜렷한 자연 지향성, 우리말의 리듬과 토속적 아름다움을 잘 살려냈다는 점 등에서 공통점이 보인다. 때문에 세 시인은 이후 ‘청록파’로 불리는데, 알고 보면 이들은 시집 한 권을 함께 낸 것 외에는 특별히 행보를 같이 한 적이 없다. 조지훈의 생애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조지훈(趙芝薰, 1921~1968)은 경북 영양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는 성균관 유생 출신인 할아버지와 개화 지식인인 아버..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59. 해방 직후의 문단 상황 해방 직후 문단의 과제 해방 직후 문단의 두 가지 과제는 식민지 시대 문학의 청산과 새로운 민족 문학의 건설이었다. 문학인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식민지 시대 문학의 청산을 강조하면서 일본의 통치 아래 이루어진 민족 정신의 위축에서 벗어나 민족 문화의 방향을 바로 잡고자 노력한다. 그러자면 철저한 자기반성과 비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등장하였다. 당시 문단에는 일본에 의해 왜곡된 민족 문화를 바로 잡아야만 새로운 민족 문화가 건설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일반화되고 있었다. 해방 직후 한국 문단에서는 문학 활동의 사회적 기반을 확립하기 위한 문단 정비 작업이 이루어졌다. 식민지 시대 문화의 청산과 문인들의 자기반성을 목표로 한 이 작업은 안타깝게도 실천 과정에 있어 문학적 이념의 대립과 갈등에 빠져 ..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58. 윤동주 윤동주의 생애 어린 시절 윤동주(尹東柱, 1917~1945)는 만주 간도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명동은 조선인들이 모여 살던 전형적인 농촌이었는데, 1899년에 윤동주의 외숙부인 김약연 등이 개척한 마을이었다. 이 마을은 기독교, 교육, 독립 운동의 중심지로 문화 운동이 활발했고, 윤동주의 할아버지는 기독교 장로였으며 아버지는 명동학교 교사였다. 윤동주는 명동촌의 큰 기와집의 밝은 환경에서 자라며 사색적인 성품을 가지게 된다. 일찍이 소학교 시절부터 문학을 접하는데, 소학교 4학년 때 고종 사촌인 송몽규와 함께 «어린이»와 같은 소년 잡지를 구독하고 연극 활동을 하였다. 5학년 때에는 송몽규와 함께 월간 잡지 «새명동»을 직접 등사판으로 찍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자신이 쓴 동..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57. 이육사 이육사의 생애 이육사(李陸史, 1904~1944)는 본명이 원록(源祿)이고 훗날 활(活)로 개명했다. 육사라는 이름은 그가 대구 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 수인 번호가 64 또는 264여서 그 차음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이육사는 경북 안동에서 퇴계 이황의 14세손으로 태어난다. 육사의 친가와 외가는 모두 일제에 항거한, 엄숙하고도 애국적인 집안이었다. 어릴 때 할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웠는데, 6형제가 모두 뛰어났다. 그 중에서도 뒷날 문학 평론가로 이름을 날린 원조가 가장 재기 발랄했다. 이육사는 조금 늦게 신학문을 접하여 1920년(17세) 보문의숙에 들어가고 이어 대구 교남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하였다. 1925년(22세)에는 독립 운동 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한 뒤 일본과 중국에서 항일 활동을 펼친다. ..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56. 이무영 이무영의 생애 학창 시절과 문단 활동 이무영(李無影, 1908~1960)은 본명이 용구(龍九)로, 충북 음성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이무영은 휘문고보를 중퇴한 후 1925년(18세) 일본으로 건너가서 막노동을 하면서도 작가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한다. 이윽고 자신이 존경하던 일본 작가 가토 다케오[加藤式雄]와 만나 그의 문하에서 4년 간 문학 수업을 받는다. 1926년(19세)에는 ‘무영’이라는 아호로 장편 과 를 발표하고, 1927년(20세)에 장편 «폐허의 울음»을 간행하였다. 1929년(22세) 귀국한 후에는 , , 와 시 , 수필 등을 꾸준히 발표하였으나, 초기 작품들은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32년(25세) «동아일보» 현상 모집에 중편 이 당선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고..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55. 세대 논쟁과 순수 논쟁 1939년 세대 논쟁 세대 논쟁의 시작 1935년, 이원조는 을 발표하며 문단의 세대를 신인 작가와 기성 작가로 나눈다. 그리고 신인 세대에게는 “신인다운 기백”이 없고, 기성 세대에게는 “대가다운 풍격”이 보이지 않는다며 두 세대 모두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원조의 이 발언은 비난이라기보다는 우려 섞인 관심에 가까웠기 때문에 신세대로부터는 크게 반발을 사지 않았지만, 차츰 신인들은 기성 작가들, 특히 비평가들의 자질과 신인의 등용 기준에 대해 조금씩 의혹을 품게 된다. 이윽고 1939년 1월 «조광»이 기획한 ‘신진 작가 좌담회’에서 그 동안 쌓인 불신과 불만이 떠올랐다. 이 자리에는 박노갑, 허준, 계용묵, 정비석 등 신진들이 참석했는데, “조선 작가에서 선배를 찾기는 좀 어려운 일”이라는 말까지 나..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54. 김광균 김광균의 생애 학창 시절 우두(雨杜) 김광균(金光均, 1914~1993)은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난다. 그는 학창 시절인 1926년(13세) , , 을 발표하는 등 일찍부터 작품을 냈으며, 1930년대에 들어 , 을 발표하는 등 문학적 재능을 보인다. 송도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무 공장에서 일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시를 써 1933년(20세) 를, 1934년(21세) , 1935년(22세) 등을 꾸준히 발표하였다. 이런 초기작을 쓸 때 김광균은 특별히 모더니즘이나 이미지즘을 의식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방식대로 시를 쓴다. 본격적인 문단 활동 김광균의 시가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당시 모더니즘의 기수로 문단의 중심에 있던 비평가 김기림의 눈에 띄면서부터이다. 1935년(22세) 말 김기림은 그해의 유망 신인.. 현대문학테마